//평론//
사라지는 풍경에서 피어나는 생성의 회화 —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에 부쳐
김종기(미술평론가, 철학박사-미학/사회철학)
- 바다와 산의 경계, 사라지는 숲의 기록
‘서울공화국’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불편한 현실 언어로 자리 잡은 지금, 수도권 과밀과 지역 소멸의 불균형은 국가적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한편에서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생태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은 또 다른 개발의 이름으로 지역의 자연과 삶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한반도 남단, 천혜의 생태 보고(寶庫) 중 하나인 가덕도이다.
이곳은 신공항 건설이라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의 이름 아래,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해안 숲과 동백나무 군락이 사라져가는 현장이 되었다. 가덕도의 동백 숲과 해안 식물들은 경제 효율성과 성장 논리 앞에서 언제든 대체 가능한 풍경으로 취급된다. 바로 그 ‘소멸의 현장’이 유현욱의 예술이 태어난 자리이다.
그는 이념적 논쟁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불분명한 경제적 효과’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생태 파괴’라는 상식적·합리적 관점에서, 사라져가는 뭇 생명의 ‘품’을 예술의 언어로 기록한다. 꽃과 나무, 풀과 숲, 그 미세한 생명들의 숨결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의 행위는 개발의 논리가 삼켜버린 세계를 되살리려는 예술가의 윤리적 응시이다. 그것이 유현욱의 가덕도 프로젝트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이다.
유현욱의 가덕도 작업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생태의 기억을 회화적 언어로 재생하는 의례적 행위이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지고 있는 가덕도의 숲, 그 속에서 끝까지 피어난 동백 꽃잎과 해안 식물들의 마지막 숨결이었다.
작가는 이곳에서 동백, 감잎, 마삭풀, 고사리, 개모시풀 등 해안의 식물들을 직접 채집하여 말리고, 삶고, 침전시키며 자신만의 안료를 만들어냈다. 그 안료는 단지 색의 재료가 아니라, 시간과 생명의 잔존물이며, 사라지는 자연의 육체 그 자체이다. 그의 회화는 이처럼 ‘소멸의 현장’에서 시작한다. 그림의 한 점 한 점은 꽃잎의 분말과 잎의 섬유, 그리고 작가의 손길이 겹겹이 스며든 생태적 회화의 층이다.
그는 특히 가덕도의 동백나무 숲을 단일 시점의 해체를 통해 자연의 내적 리듬을 드러낸 대형 회화로 구현한다. 이는 원근법적 시선이 배제된 동양화의 다시점적 구도 속에서, 숲의 안과 밖, 시간과 공간, 생성과 소멸이 서로 스며드는 지각의 장을 열어 보인다. 그것은 산업사회가 단절시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윤리적 회화, 곧 ‘살아 있는 물질로 그린 풍경’이다.
2. 점에서 숲으로 — 생명의 드라마를 구성하다
유현욱이 가덕도의 식물로 만든 안료를 통해 표현한 것은 거대한 형상도, 명확한 재현도 아니다. 그는 그것들을 ‘도트(dot)’, 즉 점(點)의 형태로 전환한다. “처음엔 원을 그리고 싶었지만, 결국 점으로 가야 했다”는 그의 고백처럼, 점은 생명의 최소 단위이며, 모든 존재가 모여 숲이 되는 생성의 알갱이이다. 그는 이 알갱이, 점 하나를 직접 만든 한지에 입힌다.
그가 만든 한지는 하루에 한 장밖에 뜰 수 없는 느린 노동의 산물이다. 그 한 장의 종이는 다시 세 겹, 네 겹으로 이어 붙여지고, 각 점은 서로의 숨결을 흡수하며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햇살 아래에서는 투명하고, 그늘 속에서는 흐릿해지는 그 색의 변화는 마치 자연의 시간성 — 생성과 소멸, 밝음과 어둠 — 을 은유한다. 가덕도에서 수집한 풀과 꽃 등의 식물로 만든 안료를 전통 기법으로 만든 한지에 입혀 만든 도트 회화. 이 도트, 점들은 극단적인 추상이지만, 그 속에는 가덕도의 생명이 응축되어 현전하고 있다. 이는 데리다의 말처럼 ‘부재의 현전’이다.
이 점들이 모여 가덕도의 숲이 되고, 숲은 다시 생명들의 드라마로 확장된다. 그림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생태계로서 존재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풀 하나가 모이면 숲이 된다.” 그의 회화는 바로 그 ‘모임’의 미학, ‘서로-됨’의 조형이다.
3. 물질의 시간, 불완전의 미학
유현욱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완벽하지 않음’을 긍정하는 미학이다. 그가 손수 만든 식물 안료는 공장에서 나온 물감처럼 균일하지 않다. 발색은 약하고,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랜다. 그러나 그는 그 불안정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시간의 흔적이자 생명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그는 말한다. “완벽하지 않은 채로 두는 게 좋다. 손으로 만든 것이기에 변하고, 약하고, 바래간다. 하지만 그게 더 자연스럽고, 더 진실하다.” 이 불완전의 미학은 단지 재료적 한계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유하는 ‘유한성’의 철학으로 확장된다. 그의 그림은 사라지는 색을 통해, 존재의 덧없음 속에서 생명의 순환을 찬미하는 노래가 된다.

4. 회화의 윤리, 리좀적 아카이브
유현욱의 가덕도 작업은 회화를 넘어선 ‘아카이브 아트’의 성격을 지닌다. 그가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가덕도를 찾아 채집한 식물들, 그 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메모, 심지어 여과지에 남은 침전물까지도 그는 버리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소멸의 기록이자, 자연의 또 다른 얼굴”로 남는다. 이렇게 쌓여간 그의 자료와 재료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게 하는 예술적 아카이브이다.
이 아카이브는 들뢰즈가 말한 리좀(rhizome)의 형식을 닮아 있다. 리좀은 중심이나 위계 없이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는 생명의 네트워크이다. 하나의 뿌리가 다른 뿌리로 연결되듯, 유현욱의 작업은 ‘기록’과 ‘회화’, ‘식물’과 ‘인간’, ‘물질’과 ‘시간’을 끊임없이 접속시키며 새로운 의미의 지층을 만들어낸다. 그의 회화는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스며드는 리좀적 생태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리좀적 사고는 생태 예술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자연은 결코 직선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수많은 뿌리와 잎, 흙과 바람, 인간의 손길이 얽혀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유현욱의 그림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시간과 물질, 감각과 기억이 서로 침투하며 자라나는 ‘생명의 구조’이다.
이는 단순한 기록의 축적이 아니라, ‘기억이 다시 생명으로 변환되는 과정’ 즉, 시간의 미학적 변환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이 땅의 생태가 지워지는 시대에, 예술이 여전히 ‘살려내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증언한다. 그는 기술 문명이 지운 세계의 질감 속에서, 손의 노동, 느림, 그리고 흙과 식물의 냄새로 다시 예술의 근원을 호출한다.
5. 진실의 섬광 – 사라지면서도 살아나는 것들
유현욱의 가덕도 작업은 (그 이전의 전시 작업에 글쓴이가 붙인 전시 비평의 제목처럼) “소멸과 탄생의 경계에서 생성을 노래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 생성은 단순한 순환의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진실의 섬광’(Aufblitzen der Wahrheit), 즉 사라지는 순간 속에서 돌연히 빛나는 진실의 순간과 닮아 있다.
벤야민에게 역사는 완전한 서사가 아니라, 파편 속에서 번쩍이는 진실의 찰나이다. 유현욱의 회화 역시 그러하다. 그의 붓끝에 남은 안료의 흔적, 침전물의 잔결, 바랜 색채의 결락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연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나는 ‘섬광’을 본다. 그 섬광은 개발의 논리에 묻힌 땅의 목소리, 사라진 숲의 기억,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의 기척이다.
가덕도의 동백은 이제 물감이 되어 다시 피어난다. 그의 그림은 그 붉은 잎사귀처럼, 사라지면서도 살아나는 생명의 형상이다. 들뢰즈의 리좀처럼 끝없이 연결되고, 벤야민의 섬광처럼 찰나에 번쩍이며, 그의 회화는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그의 붓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생태적 기억의 매개이며, 그가 만든 색은 자연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가덕도의 동백은 이제 물감이 되어 다시 피어난다. 그의 그림은 그 붉은 잎사귀처럼, 사라지면서도 살아나는 생명의 형상이다. 가덕도가 신공항이라는 개발의 논리에 사라진다 해도, 그 속에 뿌리를 묻고 살아왔던 뭇 생명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것, 이것이 그가 보는 예술가의 책무이며 예술의 윤리학이다.
“남의 눈에 꽃이 되고, 남의 눈에 잎이 되어 발끝마다 상내나라.” — 가덕도의 옛 노래말처럼, 유현욱의 회화는 소멸의 자리에 피어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존재의 찬가이다.//김종기//
장소 : 디오티 미술관
일시 : 2025. 11. 06 – 11. 19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