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작년의 작업이 ‘놀이 가는 길’이라는 부제를 통해 여행과 마음의 여정, 자기 치유와 성찰을 담아내는 시간이였다면, 올해의 작업은 그 연장선 위에서 한층 더 비워내고 가다듬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주제 자체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작년의 작품이 다소 거칠고 투박한 감정의 결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면, 올해의 작업은 그 감정을 되돌아보며 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여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이 변화는 표현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부조의 형식을 통해 화면을 직접 깎아내는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하나의 형태와 선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면을 제거해야 하고, 그 과정은 엄청난 노동을 요구한다. 커다란 덩어리를 더 작은 덩어리로, 다시 그 덩어리를 미세한 면으로 나누어가며, 결국에는 선(線)만 남기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나에게 이 행위는 단순한 제작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내기 위한 일종의 수행과도 같다. 불필요한 것을 지워내고, 덜어내고, 끝내는 선으로만 남는 이 작업의 과정은 곧 나 자신의 마음과도 맞닿아 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작품은 평면 회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손끝으로 느끼면,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요철과 미묘한 볼륨이 존재한다. 이 극히 작은 입체의 감각을 위해 화면 전체를 깎아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보이지 않는 노동’과 ‘숨겨진 시간’이야말로 작품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관객에게 과시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과정이며, 내면을 닦아내는 하나의 길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한 겹 더 깊은 성찰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올해의 작품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동행자’의 변화이다. 작년의 작업에서 내가 주로 다루었던 동행은 사람이었고, 관계였으며, 삶 속에서 스쳐간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 주체가 자연으로 옮겨갔다. 화면에 등장하는 새, 수양버들의 가지, 배, 흐르는 강물 등은 모두 나를 자연과 다시 연결시키는 상징적 존재들이다. 특히 새의 이미지는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비상하는 새의 모습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나 자신의 내면과 닮아 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더 높은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의지이며, 더 자유롭고 우아한 상태로 나아가고 싶은 갈망의 표현이다.
작품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나는 나 자신을 강물 위에 투영한다. 강물은 모든 것을 담으면서도 그 어떤 것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흐르며, 스스로를 비우고, 다시 채워지는 존재이다. 나는 그 강물처럼 살아가고 싶다. 모든 집착과 무게를 내려놓고, 흐름에 몸을 맡기며 자유롭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삶의 태도이자, 예술가로서의 다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1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이어간다는 것은 거대한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다시 다음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다가오는 전시는 또 하나의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깎아내고, 비워내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곧 의미이다. 비워냄은 곧 채움이며, 고요함 속에서 다시 새로운 감각과 마주하게 하는 힘이다. 작은 새 한 마리, 가느다란 가지 하나, 보이지 않는 요철 하나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삶의 무게이자, 동시에 삶을 가볍게 하기 위한 몸짓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업은 끝없는 질문이자, 끝없는 비움의 행위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화면 앞에 서서, 나를 깎아내며 또 하나의 선을 남긴다.//이인철//
장소 : 갤러리 화인
일시 : 2025. 11. 21 – 11. 3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