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2011년, 갤러리세인의 개관전 주제는 ‘작가정신’이었다. 작가정신이 투철한 작가들의 진정성 있는 작품을 전시 공간에 펼쳐보고자 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초심을 다시 찾는다. 갤러리세인 개관 15주년 기념 2부 전시는 갤러리세인 초기에 함께하며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던 뚝심 있는 황은화 작가, 그리고 작가주의 작가를 발굴해 온 갤러리세인의 인물 시리즈 전시부터 KIAF Seoul(한국국제아트페어)에 몇 차례 소개한 박종호 작가와 함께한다.
두 작가의 회화적 표현 방식은 유사하지 않지만, 각자의 조형 언어를 내면에서 끌어낸 진중한 철학적 사유와 거침없는 삶을 캔버스에 옮기는 데 탁월한 작가들이기에 한 공간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박종호 작가와 갤러리세인의 첫 전시는 2018년 5인(정복수, 성병희, 이유미, 유현경, 박종호) 인물 시리즈 ‘FACE TO WORKS’였다. 당시 박 작가의 개인전 주제는 ‘일어서는 사람’이었다. 작품 중 아들을 안고 있는 ‘일어서는 사람’을 포스터로 사용해 강한 인상을 주었다. 더불어 불꽃놀이, 자화상 시리즈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전시 기간 동안 매일 관람객에게 진지하게 설명했고, 동일한 작품을 관람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맞춤형 설명을 하기도 했다. 작가가 얼마나 깊은 성찰로 자신을 넘어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지가 인상적이었다.

그 후 미술관과 타 갤러리 전시를 통해 발표된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꾀하며 확장되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 쓴 소설에 그림이 등장하고, 모노타입 판화를 찍어 색다른 조형적 표현을 구현했다. 인물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풍경과 정물도 잘 그리는 작가임이 증명되며 시선이 더욱 머무르게 한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발표된 작품 일부와 2025년 작품으로 구성된다. 신작에서 큰 변화 중 하나는 붓질이다. 기존에는 형상에 집중해 표면을 매끄럽게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붓 터치가 드러나는 거친 면들이 보인다. 작가의 내면과 감정의 흐름이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추상적 제스처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작업실 정면 벽에 걸린 짐을 실은 자전거 대작과 작업 과정에 있는 작품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터뷰 당시 작가 역시 그 지점을 강조했다.
작가는 유년에 겹겹이 쌓인 트라우마를 50대 중반의 중년 일상에서도 껴안고 있다. 그 감정은 고스란히 작품으로 옮겨지고 있다. 표현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고 확장되며, 때로는 현실 속 다정한 아버지, 따뜻한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시나브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업힌 아이,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청년, 산을 오르는 남성,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뛰어가는 소녀까지. 이제 남성 중심의 대상에서 여성이 등장하는 변화 또한 고무적이다. 강한 표현 방식이 밝고 따뜻한 색조로 덮이는데, 이는 작가의 기저에 깔린 선한 성품의 제스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모노타입 판화 20여 점이 함께 선보인다. 작가의 창작 활동의 다양성과 깊이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황은화 작가는 갤러리세인 2011년 개관 이후 몇 차례 함께 전시를 해왔다. 당시에도 뚜렷한 주제와 독창적인 표현 방식으로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올 상반기, 다른 장소에서의 전시 소식을 담은 엽서를 보내왔는데, 그 사이에 더해진 서정성이 눈에 띄었다. 천천히, 묵묵히 작가의 길을 걷는 진정성 있는 작가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그 시기 이미 회화를 넘어 공간을 연출하는 설치 미술,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오브제를 나무로 깎아 만든 형태(컵, 의자 등)를 캔버스에 부착하며 2차원 캔버스 안에서 3차원의 설치를 시도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당시에도 독보적이었다.
최근, 당시 전시에서 작품을 소장했던 고객의 집을 방문해 그 작품을 다시 만났다. 3점의 작품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고, 거실과 피아노 위에서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전시 작품은 작업실에 펼쳐진 최근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오브제의 변화와 면의 다채로운 표현 방식이 눈에 띈다. 100호 크기의 작업에 부착된 오브제는 지팡이 손잡이 형상이다. 마치 작품이 물음표를 던지듯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세대 간 소통의 방식, 그리고 어른 세대가 건네는 ‘지혜의 지팡이’ 정신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사고를 위협하는 것들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하고 있는 것이다.
가파르게 변화하는 시대, 최첨단 AI(인공지능), ChatGPT 등 편리함을 넘어 인간의 사고를 위협하는 요소들 속에서, 청년과 아이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작가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지팡이 오브제에 담겨 있다. 온화한 색조는 어른들의 포용력 있는 사랑을, 밝고 경쾌한 컬러는 긍정의 에너지를 감싼다. 섬세한 붓 터치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하나의 기도처럼 느껴진다. 투철한 신앙생활로 다져진 일상, 거룩할 정도로 정돈된 작업실에서 작가의 성실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박종호와 황은화, 두 작가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다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 집요한 집중력, 그리고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성실한 일상은 매우 닮아 있다. 갤러리세인에서 두 작가의 밀도 높은 작품이 펼쳐지며 공간 또한 새롭게 숨 쉬듯 변한다. 공간은 그 안을 채우는 존재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진다.
이제 관람자의 차례다. 당신의 눈빛과 마음으로 작품과 마주하는 그 순간, 진정성 있는 작품과의 조우를 통해 슬픔을 나누고, 평온해지며, 예술과 진정한 벗이 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갤러리 세인//
장소 : 갤러리 세인
일시 : 2025. 12. 02 – 12. 17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