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계용 회고展(피카소화랑)_20260220

//평론//
자연의 질서와 문명화된 도시, 그 속에서 발현되는 삶의 근원

1.
황계용 회화작품의 대표적 인상과 내용을 규정지어 말하자면 ‘상황과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황과 인식’이란 말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하는 가장 치열한 단어 이면서 많은 창작자들의 화두로 부르짖던 개념이기도 하다.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언어들이었고, 그래서 부르짖어야만 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 세월이 지나자 이제 바야흐로 세상은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에이 아이’ 때문에 혼란스럽다. 세상은 지금, 땅은 둥글게 생겼고 상상 속에만 있던 그 땅이 이 반대편 어디에 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15세기의 그때와 비견 될만한 일대 변혁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 당시 진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겨졌던 절대적 권위의 종교는 연이어 촉발되는 ‘발견과 발명들’에 의해 그 억압과 허구성의 가면을 뺏기게 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르네상스’의 시발점이다. 이 여파로 유럽 사회는 권력과 재산의 판도가 송두리째 변화되며 그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윤리적 ‘혼란’이 여기저기서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이 시대적 변화의 움직임이기도 한 ‘혼란’이 언뜻 보면 그때나 지금의 현시대의 혼란 스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흥미 있는 것은 둘 다 인간의 본성과 기질 그리고 능력에 기반한 것이긴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상반되는 입장 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인간성 회복에 대한 자각이라면, ‘에이 아이’시대의 도래는 겨우 회복된 그 알량한 인간성과 가치를 다시 잃을까 봐 생기는 불안감에서 오는 혼란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거가 믿음과 존재의 허구성에 대한 혼란이었다면, 지금은 생존과 가치관의 붕괴 위험에 대한 ‘혼란’ 이다. 이 혼란 스런 ‘상황’을 헤쳐나가려는 분별력과 통찰력 에 대한 요구가 황계용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사정과 상황은 이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한반도의 15세기는 문화 중흥의 시발이 되던 때였고 인권에 대한 개념도 전에 없던 발전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우리에게서 가장 큰 ‘혼란’의 시기는 일제의 침탈과 한국전쟁 및 그 전후의 근대화 과정 무렵이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가장 먼저 촉을 느끼며 살아가는 부류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술가들이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이런 ‘촉’들을 타고나며 환경과 같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 심화 된다. 부산을 비롯한 서부 경남지역은 근대 이후 한반도의 혼란상을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면서도 압축적으로 겪은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작품 제목의 50퍼센트 이상을 “상황”으로 표기하였던 황계용의 작품들을 이 시점에서 더욱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면 ‘상황’으로 인식된 그의 작품의 주요소재는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였기 때문이다. ‘빛’은 시간이며 ‘공간’은 인간이 사는 무대이다. 21세기의 초입에서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롭게 재편되려 하는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 대한 사유의 기회’를 가져 봄 직하지 않은가?

2.
황계용은 영남 서부지역의 맹주였던 진주 출신이다. 진주(晉州)는 남쪽 바다 끝의 통영에서 시작되어 고성, 진주, 사천, 함양, 밀양에 이르는 경남지역 토착문화의 전형을 옹골차게 이루어 온 곳이다. 경북에 안동이 있다면 경남에 진주가 있다고 할 정도로 문향 과 예술의 정기를 이어 받아온 지역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의 문화적 디엔에이와 청년 시절부터 생활해온 부산지역에서의 환경적 요인은 그의 작품 소재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창작 동기의 시작이 자연환경을 감성적으로 느끼고 기억하였던 것을 다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다. 황계용의 경우에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늘의 구름 들과 함께 어떤 황홀한 꿈속을 헤메고 있는 듯한 환각 속에 빠져들어…,푸른 하늘 멀리로 보이는 보이는 유토피아…”
(2005년 5월,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하늘의 구름만큼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

“ 환각과 같은 세계,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는 꿈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상기와 동일 출처)

그의 전 작품에 보이는 환상적 이미지는 구체적이지 않게 시작되었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구체적 이미지로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파란 하늘과 몇 조각의 구름, 공중에 떠 있는 깃발, 차갑고 건조한 장소에 홀로 등지고 누운 여인의 뒷모습 등이다. 환상적 이미지라고 칭한 이유는 화면 속에 나타난 이런 이미지들이 처 해져 있는 공통점이 모두 비현실적 내지는 초현실적 기분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정형화된 듯 보이는 각진 형태와 더불어 정확하게 구분되어 분절된 공간의 조각들. 명암의 한계선이 뚜렷하다 하여도 배치된 형태와 물리적 환경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그것은 21세기 말에 생겨날지도 모를 것 같은 우주공간의 공기와 다차원의 셰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인공지능에 의해 빌드업(build up) 된 계산된 상상일 것 같은.

그가 희구하고 바라던 환각과 환상의 세계는 이 두 개의 모순된 감정 어디쯤엔가에 있었던 같다. 서로 교차하는 상반된 감정을 빛과 어둠, 부드러움과 강직함,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징 등의 농밀한 은유가 치열한 감정을 억눌러 감추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유토피아의 은유는 간접적이었고 그 욕망에 대한 에너지도 쉽게 사그라들지는 못했다. 인간사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자연계의 순수한 물리적 형태와 움직임 또는 바람과 공기 그 속을 가르는 빛이 그를 이끌고 있었던 같다.어떻게든 그 형상을 붙잡고자 노력했던 그의 노력이 화면 전체에 퍼져있는 작은 면 하나하나에 짙게 자리 잡고 있다. 빛의 움직임에 대한 깊은 성찰은 환원과 확산의 개념을 하나의 공간 속에 구현해 보리라는 그의 순수한 감성적 욕망이었다. 감성적 욕망이란 인간의 본능이다. 늘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빛의 스펙트럼이나 그라데이션(농담:濃淡)은 시지각의 구조와 그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특성에 기인한다. 빛의 농담이 사람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그동안의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많은 내용이 밝혀졌다. 독립적 개체로서의 사람의 눈은 빛의 변화에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눈에 강한 빛이 들어오면, 우리 시각 시스템은 그 신호를 매우 또렷하게 인식해. 망막에 있는 빛 수용체(시세포)들이 강하게 활성화되고, 이 신호가 뇌의 시각 피질로 빠르게 전달된다.

밝은 빛은 주변과의 대조를 극명하게 만들어서, 뇌가 정보를 ‘쉽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본능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리고 약한 빛은 반대로 뇌 에게 좀 더 많은 ‘노력’을 가질 것을 요구할 것이다. 눈은 더 많은 빛을 모으기 위해 동공이 확장되고, 빛에 민감한 시세포들이 더욱 활성화되어 미세한 빛도 감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뇌는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패턴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가 하면 뇌는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그림자나 빛이 만들어내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옵티컬 아트와 착시효과를 이용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이유다.

한 시대를 살다간 작가의 작품 전체에 대한 조망을 고작 몇 페이지의 분석으로 다 할 수는 없다. 작가가 옆에 있다면 그의 생각이 회화에 어떤 식으로 치환되거나 승화될 수 있었는가를 보다 자세하고 친절하게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이 된 지금, 그가 직접 써놓았던 몇 줄의 글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진실한 오마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 자연의 현상을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진주를 떠나 부산에 정착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이다. 본격적인 회화 작업의 초기 시작은 ‘빛’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빛이 들어오는 움직임과 방향 혹은 세기(intensity)등 태초의 움직임과 형태에 대한 원초적 시선의 근원을 ‘빛’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의 움직임을 현실적 물건들이 아닌 자연계의 기초 단위 중 하나인 ‘면’에서 찾아갔다. 일정한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불 특정 사각면 속에 존재하는 빛의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황을 균일한 모양으로 놓고 빛의 세기만 조절하여 하나의 면을 만든다. 뒤이어 그 옆이나 뒤에 또 하나의 면을 이어붙여 하나의 새로운 면을 만든다. 하나의 면은 독립된 공간이며 독립된 세계이다. 빛이 있으므로 사물의 존재는 가치와 의미를 획득한다. 빛이 오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광원이 있어서 빛이 있는 것이 아닌 태초의 빛은 방향성이 없다. 아래에서 밑으로, 동에서 서로, 좌에서 우로 가기도 한다. 인간이 오직 그 방향을 당시 상황에 맞게 느낄 뿐이다. 텅빈 공간에 가득 채워진 빛의 모습을 잡으려하는 그 상황을 묘사하려는 시도에서 그의 70년대 회화 들이 생겼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빛’이라는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은 각자의 방법으로 시각화되기를 원하는 심리적 욕구가 생긴다. 이 심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그는 빛의 세기와 농담을 그 방법으로 쓰고 있다. 그는 그의 머릿속 상상 속의 존재가 손끝에서 재현된 빛의 농담을 그의 손으로 확인해갔다.
    무엇보다도 초기 황계용 작업의 화면을 채우고 있는 요소중 가장 주목을 끄는것은 구체적 사물의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일정하진 않아도 사각형이라는 견고함과 각자의 명암을 가진 구체적 형태이긴 하다. 그렇다고 이 아무런 서사가 없는 단위조각 들이 구체적 형상의 모습이라한다면 대체 무엇을 그렸다고 할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차라리 애둘러 말해서 한국의 단색화 계열의 작품이라 하여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겉모습만 보고 이야기 한다면 그의 초기작업은 1970년대 당시의 한국단색화 계열의 그림들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유사하다는 것은 그 화면이 가지는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며 개념적 뿌리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당시 그런 회화적 유사성을 가진 작가라면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다수가 존재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그 누구도 상대방의 작업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지금처럼 정보와 이미지의 전달이 쉽지도 않았거니와 빛의 그라데이션 현상을 재현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공통된 호기심과 재미 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내 작가로만 본다면 이 세 사람은 나이도 비슷해서 공통된 감각적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되는 환경 일 수 도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도 하게 된다. 부질없는 상상이긴 하였겠지만. 이들 셋 중 두 사람은 고인이 되었고, 한 분은 여전히 빛의 농담을 즐기며 화면 위에 표시하고 있다. 작게 하던, 크게 하던 빛을 화면 위에 표시(묘사)하는 것은 어떤 재미와 효과를 주는 것일까. 또한 옵티컬 아트와의 유사성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2차대전 전후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흐름 이기도 한 이 양식은 시각적 효과를 극도로 이용하며 종내에는 착시의 오류까지도 회화의 분야로 끌어들였다. 이쯤 되면 서사성보다는 서정성의 차원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이야기 보다는 인간의 생리적 특성상 흥미를 유발시키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것이고 많은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에서 유래한 상황을 시각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몬드리안(P.Mondrian : 1872~1944)의 경우는 공감하는 바가 있다. 몬드리안은 형상의 보편적인 측면을 탐색하다가 자신과 최소한의 색으로 구성된 전혀 재현적이지 않은 그림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지각한 한 이미지의 본질을 구성하고 내용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그는 감상자가 그 이미지에 대한 나름의 지각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본질을 파악하여 그 내용물 자체에 한정 되어 있는 그 의미로부터 탈피한다는 것이다. 추상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기본적 자세와 태도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의미에서 탈피한다는 것이고, 그 사물의 겉모습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라 빛을 받고있는 하나의 게체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는 그렇게 하여 새로운 기하학적 추상화를 그리는 이론적 기초를 확립하고 있다. 그가 사망하고 15년이 지난 1959년 뇌과학자들은 몬드리안의 이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중요한 생물학적 토대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뇌로 들어온 시각정보를 인식하는 신경세포들이 수직, 수평, 빗금과 같은 특정한 방향으로 놓인 단순한 ‘선’과 ‘모서리’에 1차 적으로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이란 형상과 윤곽의 구성단위를 말하는 것이며 모서리와 각을 기하학적으로 조립함으로 궁극적으로 하나의 표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림속의 물체가 무엇을 그렸는가를 알아보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효과만으로 자연과 그 상대인 사람을 서로 연결 시킨다는 순수한 동기를 경험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에 관한 뇌 생리학자들의 연구는 보다 직접적이다.
    “생리학자들은 몬드리안과 같은 일부 화가들이 보편적인 형상 이라고 생각 하는 것 중에서 일부 형상에만 콕 찍어서 반응하는 뇌세포가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들은 신경계가 더 복잡한 형상을 구체화(표상화)하도록 하는 구성 단위가 바로 이 세포들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물체를 바라 보았을 때 생기는 시각피질의 분석적 정보와 화가의 창작 사이의 관계”는 이같은 과학적 메카니즘에 의한 인과관계와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 그림 자체로서의 완성도도 중요 하지만 누군가 그림을 보았을 때의 교감을 통하게 되는 그 순간을 작품의 최종완성으로 본다는 생각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이것은 마치 양자역학에서 괸찰자의 유무에 따라서 좁은 틈새를 지난 그 빛의 흔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현대 물리학의 이론을 연상하게도 한다. 그리고 황계용의 작품들을 볼 때 이런 과정들이 우리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미술에 대한 흔치 않은 접근이다. 현실 생활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추상적 형태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되는 첫 번째 단계인 시각정보의 인식 과정을 설명하는 것도 이렇게 장황하다.

황계용이 주로 사용하는 구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큰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할된 작은 공간이다. 그는 먼저 화면 전체를 여러 개의 작은 화면으로 나누고 각각의 빛을 부여한 독립된 작은 세계(世界)를 끊임없이 만들어 중앙에 놓아 공간감을 극대화 시킨다. 그런가 하면 독립된 개체 전체를 크게 확대하여 화면에 가득 채우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독립된 개체의 묘사방식보다는 왜 이런 방식을 그가 택했으며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는가를 알고자 하였다.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초기의 작품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필자는 앞서 잠시 언급한 그의 출생과 부산으로의 이동 그리고 한국의 1970~80년대를 거론한 적이 있다. 1970년대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던 시절의 감성을 그 시초로 하고 있다. 그리고 80년대는 개발과 그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격동과 성장의 양면성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던 때였다. 이른바 미술의 사회참여운동이 성행하던 때였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민중미술의 기세가 휩쓸고 있었다. 부산도 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 사실주의 계통으로 분류될 만한 나름의 양식으로 ‘형상 미술’이 싹트기 시작했던 때 이기도 하다. 1989년 2회 개인전 서문에서는 그의 이러한 심정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곳이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열(列)과 오(伍)를 잘 맞춰 장시간 부동의 자세로 서 있을 경우가 있다. 정확한 정렬과 침묵, 무거운 긴장감 등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미(美) 일 수도 있다. … 우리의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물건 하나 하나, 우리의 몸가짐 하나 하나에도, 그냥 그대로 놓여져 있거나,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그 나름의 목적에 따라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의미의 부동자세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그리고 그것에서 후닥닥 이탈하여 마음껏 활개쳐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1986.10. 제 2회 개인전 서문에서)

빛의 이미지를 쫓아 환상과 부활의 의미를 찾아오던 그에게 탈피와 탈출 그리고 이탈의 감정이 생긴 것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그의 글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의 선비적 태도나 심성으로 보아 직선적이며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나마 현실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 같다. 90년대 들어 규제와 이탈에 대한 작업은 점점 그 내용이 구체화 되어 현대 문명사회의 일탈로 바뀌어 간다. 70년대 초기의 그의 형상에 대한 표현의지는 빛의 그라데이션으로 그려져왔다. 그러나 자연계의 에너지를 향한 순수 열정만 표현하기에는 여전히 그의 피는 뜨거웠던 것이다. 넓은 공간은 깨어지고 흩어지며 인간의 의지와 꿈과 희망을 담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복잡하게 나뉘어진 공간에 서명처럼 단청문양이 등장 했던 것은 그의 관심사가 일상으로 내려 온 것을 암시한다. 악기인 바이올린을 등장시킨 것은 바이올린이 가진 물성과 연상작용을 화면속에 올려놓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단청 문양을 비롯한 폴대나 깃발 등으로 지금까지 수십년을 버리지 않고 있던 사각형의 밀집지대에 변화와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은 회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이었다.//평론가 이상수//

장소 : 피카소화랑
일시 : 202. 2. 20 –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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