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윤새롬은 자신의 조각이 간직할 수 있는 정(情)을 탐구해 왔다. 그는 조각에 빛을 담는 것으로 고요히 그리고 풍요롭게 쌓인 정을 꺼내어 놓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함께 했던 이들과의 정을 풀어내 ‘서정(抒情)을 간직한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을 풀어내는 조각이 타인에게 긍정의 계기가 되고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명하고도 영롱한 빛을 모아왔다. 노을이 늘어진 바닷가의 여유로움과 푸른 땅을 밀고 올라오는 꽃망울의 풋풋함을 은유하던 그의 조각은 어느 날의 기록이자 일기가 되었다. 이번 ‘어느 날의 조각들 05: 일기’ 전에선 작가의 정과 빛을 한데 모은 문집(文集)을 선보인다. “기억의 기록”과 “색으로 쓴 일기”를 펼쳐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들”을 함께 바라보려 한다.
글을 쓰다 제주 세화 앞바다에 나왔다. 바다 빛이 윤새롬의 조각과 닮았을 거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오는 길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유채와 노란 꽃밭을 떠받드는 초록의 새싹들을 보았다. 색과 색의 사이에서 계절이 오간다. 작가의 일기 속에선 하나의 조각을 비슷한 성격의 다른 하나가 뒤따르며 자신들의 색을 키워낸다. 오늘은 유채처럼 빛나던 조각이 내일은 벚꽃처럼 빛날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액자 속에선 또다른 조각이 바다처럼 빛난다. ‘어느 날의 조각들 05: 일기’전에서 당신의 마음처럼 빛나는 조각을 발견하길 바란다.//이주희 미술평론가//

//전시 소식//
윤새롬은 조각을 만든다. 시각적으로 조형적으로 미술이라는 의미 체계와 사회적 함의 내에서 공간감을 차지하는 물체를 만든다. 앞서 언급한 몇몇 항목들이 윤새롬의 조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오늘날 많은 비중의 조각들은 기성의 물질을 가공해 의미 또는 조형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조각의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윤새롬의 경우에는 조각의 기초 단위가 되는 물질인 ‘크리스탈 Crystal’을 직접 만드는 것에서 작품이 시작된다. 그의 조각은 인공의 재료로 간결하고 정제된 물질을 만들지만 그것의 주요 성격들인 빛과 색의 근거를 자연으로부터 찾기에 자연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조각이 되었다. 작가의 조각이 서늘하면서도 따뜻하고, 예리하면서도 은은한 다중적 느낌을 지닌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종종 예술가가 한 재료를 오래도록 다루어 온 모습에서는 존중할 만한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수놓는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수를 놓듯 윤새롬 또한 자신의 정(情)을 한 조각 한 조각 풀어가는 서정적인 면모에서 그만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동안 윤새롬의 크리스탈 조각은 그것의 가장 고유한 성격인 투명함에서 시작해 다양한 이야기의 빛을 동시에 품어왔다. 크리스탈 조각의 투명성을 최대로 끌어낸 조형은 눈앞의 물질이 아닌 무형의 대기층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저녁놀을 떠올리게 하는 빛의 산란은 감상자를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이끌었으며, 크리스탈 내부로 차분히 가라앉은 빛은 지난날 찬란했던 순간들을 회상하고 위로하는 빛이 되었다. 작가의 조각 내부로 투명하고 보얗게 깊이감이 느껴지는 색을 찬찬히 바라보면 색상의 내부로 주목이 깊어지거나 색으로부터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유는 작가의 조각이 인간의 외부에서 어떤 존재감을 갖는가보다 인간의 내부에서 어떻게 인간과 조응하는가에 작품의 존재 원리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각에 물든 색이 “어느 날의 공기”처럼 나의 기억 어딘가와 조응이 이루어진다면 색은 나를 조각의 내부로 끝없이 끌어당기는 인력을 발휘할 것이다. 반대로 조각이 발하는 색이 내 기억 어딘가에 선명하지만 차마 들여다보기 힘든 정서를 환기한다면 색은 관람자를 밀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빛과 색을 담은 조각들을 마주하며 “이름 없이 스쳐 간 기억들”을 복기하다 보면 조각의 중심 공간이자 중심 정서에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다.
작가의 ‘어느 날의 조각들’은 생성의 단계부터 작가 스스로에게 타당한 내적 공감을 형성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고, 이와 함께 조각을 바라보는 이들과의 조응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신의 성격을 과시하기 위해 작품의 조형성이 모색되었던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은 순간”과 “감정의 자국”을 노크할 수 있는 조각의 성격이 중요하게 탐구되었다. 윤새롬의 조각은 점진적으로 심미적이고 심상적인 표현을 시도해 왔다. 주변인들에 대한 관심과 감정의 이입, 그러한 관계에서 흘러드는 충만함을 표현해 왔고,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 그리고 행복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한 “어느 날의 향기”와 “어느 날의 온기”를 표현해 왔다. 무형의 긍정적인 느낌을 빛과 색이라는 무형의 것으로 은유하며, 도시적 소재를 자연주의적 성격을 지닌 조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은 무엇을 품고있는가
이번 전시 ‘어느 날의 조각들 05: 일기’에서 첫선을 보이는 ‘어느 날의 조각: 월 피스’ 시리즈는 윤새롬의 조각들을 액자와 함께 편집한 작품이다. ‘월 피스’ 시리즈들은 일상 또는 소중한 순간을 담아두는 액자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조각 또는 오브제의 형식으로 물질 자체의 정서를 드러내는 작품들과 비교해 심상적이고 심미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액자는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의 모습 또는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들”을 담아두는 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것에는 잃어버리기 싫은 것이거나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깃들어 있다.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 아이가 유년기에 그린 첫 번째 그림과 처음 받은 상장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이거나, 사랑하는 이와 처음 떠난 여행의 비행기 티켓과 간절히 바라던 무언가의 합격 통지서처럼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들이 액자에 담긴다. 작가는 액자의 이러한 기능에 주의를 기울여 찬란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담긴 조각들을 편집해 조형의 개념적 제시가 아닌 조형의 서정적 제시를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색으로 남은 어떤 기억, 빛으로 맺힌 어떤 감정”이라 말한다. 기억과 감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일 수도, 어떤 인물 또는 스쳐 지나고 만나는 삶의 인연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일기를 쓰듯이 모아왔다. 이번 전시 ‘어느 날의 조각들 05: 일기’에서 ‘월 피스’ 시리즈들이 가득히 모인 공간은 그동안 작가가 기록해 온 기억과 감정들이 모인 작가의 일기장이 된다. 쓰다 보면 하나하나 쌓이고 나중에는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 일기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액자들을 펼쳐 “기억의 기록”들이자 “색으로 쓴 일기”를 선보인다. 한편 한편의 일기에도 온도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전히 어느 날의 기억들을 품고 있는 조각들은 그날의 감정과 그날의 온도를 품고 있다. 작품들을 따라 ‘월 피스’ 조각에 맺힌 빛의 온도를 느끼다 보면 관람자의 마음 한 켠에도 같은 온기가 스며든다. 일기의 서사들이 따뜻한 시어(詩語)가 되어 빛나고 빛을 품은 조각들은 시어들의 온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일기장은 따뜻한 시어들이 모인 서정 시집이 되어 충만한 감동과 위로를 선사한다.//리나 갤러리//
장소 : 리나 갤러리 부산
일시 : 202. 3. 31 – 5. 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