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展(갤러리 궁)_20260828

//전시 소개//
이번 전시 ‘가물 玄(Unseen)’은 장소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곶’(2026) 시리즈와 식민과 냉전의 영향 아래 끊임없이 변모해 온 땅을 탐색한 시리즈 ‘주름진 밤’(2025–2026)을 중심으로, 회화와 설치, 드로잉, 영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과 존재의 층위를 다채롭게 조명한다.

전시 제목 ‘가물 현(玄)’은 단순히 검은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玄’은 깊고 멀어 검게 보이는 상태이자, 안과 밖,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맞닿는 경계, 그리고 쉽게 구분되지 않는 문턱을 뜻한다. 작가는 이 단어를 ‘가물가물하다’라는 말의 감각과도 연결한다. 희미해진 기억, 소멸하지 않는 풍경, 존재와 부재 사이를 오가는 흔들림처럼, 선명하게 규정되는 형상보다 시간 속에 스며든 기운과 흔적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존재이다.

김유경은 특정 장소에 축적된 시간과 보이지 않는 풍경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그에게 작업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오랜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 겹겹이 쌓인 역사와 기억, 기운을 더듬는 과정이다. 작가는 선명해지기 직전과 사라지기 직전의 상태를 붙잡으며 관객 스스로 풍경 너머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곶’은 작가의 고향인 부산에 대한 개인적 기억과 익숙한 장소를 다시 마주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해안은 매립되어 바다가 아닌 땅으로 변했고, 익숙했던 풍경 역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었다. 낯설게 변해 버린 그곳에서 우연히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숲을 마주한 작가는, 변화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생명의 흔적을 발견한다. 흰 여백 위에 겹겹이 쌓이는 검은 선들은 이러한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며, 얽히고 이어지는 교차를 통해 화면에 고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전시의 중심축인 ‘주름진 밤’은 식민과 냉전의 흔적이 중첩된 땅을 오래 답사하며 형성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작가에게 이 땅은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의 시간이 겹쳐지며 생동하는 공간이다. 작품 속 검은 땅과 바위, 뿌리와 나무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넘어 그곳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삶의 흔적, 보이지 않는 기운을 응축한 회화적 결과물이다. 함께 선보이는 영상 작가와의 협업 작업은 ‘가물 玄’이 품은 다층적인 의미를 새로운 시간성과 움직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전시 ‘가물 玄(Unseen)’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일방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너무 깊고 오래되어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세계 앞에 가만히 머물게 하는 전시이다. 관객은 원초적이고 침묵하는 흑백의 회화,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새로운 시간성과 움직임으로 확장한 영상 앞에서 명확한 형상을 찾기보다 경계에 머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풍경 너머에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비로소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소 : 갤러리 궁
일시 : 2026. 08. 28 –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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