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채展(스페이스 이신)_20261001

//기획의 글//
정봉채는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포늪을 바라보고 걸으며 그곳의 시간과 변화를 기록해 왔다. 그에게 우포늪은 더이상 하나의 풍경이나 촬영의 대상이 아니다. 물과 바람, 풀과 나무, 얼음과 부유물이 서로 만나고 흩어지는 가운데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이 태어나는 살아있는 사유의 장소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물 위에 나타난 작은 흔적들에 주목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얼음이 녹으며 만든 경계, 수면 위를 떠도는 나뭇가지와 부유물, 그리고 물 위에 놓인 그물은 어느 순간 선과 기호가 되고, 때로는 어딘가를 가리키는 화살표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자연 속에서 찾아낸 완성된 상징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행위, 시간과 우연이 잠시 만나 이루어 낸 덧없는 형상이다.

인간은 언제나 방향을 찾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너무나 다양한 방향이 동시에 제시되기 때문에 길을 헤맨다. 정봉채의 사진 속 화살표 역시 하나의 목적지를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어떤 것은 물결과 빛 속에서 흐려지며, 어떤 것은 곧 사라질 듯 수면 위에 머문다. 그렇기에 이 화살표들은 길을 알려 주는 표지가 아니라, 우리가 믿어온 방향을 되묻는 질문에 가깝다. 작가는 그 끝에서 정답을 발견하려 하기보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자연의 흐름 앞에 자신을 놓는다. 물은 하나의 형상에 머물지 않고, 만나는 것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 변화 속에서 고정된 진실보다 변화 자체가 삶의 진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向, 물 위에 그려지다’는 우포늪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전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자연을 바라본 사진가가 물 위에서 발견한 삶의 기호들을 통해 방향을 잃은 시대의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건네는 전시이다. 사진 속 화살표가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불확실한 방향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잠시 멈추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한은경//

//작가 노트//
물 위에 그려진 방향 – 나는 물 위에 있는 것을 본다.

바람이 스쳐간 자리, 얼음이 녹으며 남긴 흔적, 수초와 부유물이 떠돌며 만들어내는 형상들. 그것들은 아무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질서와 의미를 드러낸다. 내가 오랫동안 우포늪을 바라보며 기록해 온 것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미세한 순간들이다.

물은 특별한 존재다. 물은 자신의 모습을 갖지 않는다. 만나는 것에 따라 형상을 바꾸고, 하늘을 담고 땅을 품으며,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이어준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물은 다투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품고,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도 결국 만물을 살린다. 나는 물 위를 바라보며 진실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의미로 변했고, 확신이라 여겼던 길은 어느새 의심의 길목에 서 있었다.

어쩌면 진실은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 나타난 화살표는 우연히 물 위에 놓인 그물이 만들어낸 형상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선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언제나 방향을 갈망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하지만 현대의 세계는 수많은 화살표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혼란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방향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화살표는 과연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어쩌면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평생 추구했던 진실조차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행위일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길 위의 존재’라고 보았고, 장자는 모든 구분과 판단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유영을 이야기했다. 노자는 억지로 길을 만들지 말고 도(道)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라고 말했다. 결국 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묻는 마음 안에서 생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포늪의 물 위에는 매일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어제의 형상은 오늘 사라지고, 오늘의 흔적은 내일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불변의 진실을 찾기보다, 변화 자체가 곧 진실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이 화살표를 따라가 본다. 그것이 정답을 가리키기 때문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흔적 하나가 삶의 은유가 되고, 자연이 만든 우연한 형상이 존재의 물음으로 확장되는 순간, 사진은 기록을 넘어 사유의 장소가 된다.

나는 오늘도 물 위를 바라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너머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도(道)’의 흔적을 사진 속에 담고자 한다. 그 화살표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길을 따라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과 세계를 만나게 된다.//정봉채//

장소 : 스페이스 이신
일시 : 2026. 10. 1 –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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