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한, 하명은展(에스플러스 갤러리)_150224

[평론] 김세한 작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과 창조행위

이태호
1. 천만 개의 빛

눈이 부셨다.
천만 개의 불빛이 천만 개의 창을 통해 빛나고 있었고 천만 개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질주하고 있었다. 김세한의 작품은 그렇게 불빛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도시 아니 영원히 잠들고 싶지 않은 도시가 거기에 있었다. 점(Dot)으로 구성된 도시의 밤 풍경은 무변광대한 대우주의 은하계 같기도 하고 점점이 퍼지다 한순간 명멸하는 불꽃같기도 하다. 그런데, 눈부시도록 화려한 도시가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느낌이 든다. 화면 가득한 도시는 존재가능과 존재불가능의 현실과 비현실의 몽롱한 경계에 있는 듯해서 일거다. 다소 비약적인 유추겠지만 어쩌면 공상영화에 나오는 멀지않은 미래의 도시일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다. 무분별한 개발과 문명의 이기심으로 인한 태양빛의 차단, 그로인한 또 다른 개발의 부산물인 인공 빛.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고성 암시가 도심 곳곳에 숨겨져 있는 듯하다.

웹이미지

2. 점(點)과 우주(宇宙)
김세한의 작품에는 점, 선, 면, 입체의 모든 원리가 충실히 나타난다. 점은 모든 조형예술의 최초의 요소로서 시발적 의미를 지닌다. 최초의 점은 텅 빈 공간에서는 외롭게 존재하는 부유물 같은 것이지만 그 점이 생김으로 무게와 긴장감이 발생한다.
그의 작품에서도 3호 붓을 이용한 형광색 둥근 점 하나가 찍힘으로서 비로소 공간이 현성되기 시작한다. 점으로 이루어진 형태는 면과 입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원리를 통해 형성된 공간이 화면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선과 곡선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서 나타나는 변화와 함께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 내게 된다. 선의 요소에서 직선은 일반적으로 경직성, 단순성, 명확성, 강함, 직접적 표현 등과 같은 남성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곡선은 자유, 섬세, 우아, 점잖음, 간접적 등과 같은 여성적 이미지를 갖는다.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에 따르면, 시지각의 기본 법칙은 어떤 자극패턴이든 단순하게 보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즉 결과적인 구조는 주어진 조건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단순하게 보여 지려고 하는 경향을 띤다. 그 속에는 동일 색채의 연합성, 속도의 유사성, 중첩에 의한 깊이와 견고함, 윤곽선의 공유 현상 등이 작용한다.
본다는 것. 실재 형상을 통해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이미지가 내용을 나타내듯이 형과 색채가 형태로서 인식될 때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건물들에게 단순성과 복잡성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정신의 인식 능력은 질서를 찾는다.
또한, 김세한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색이다. 색은 인간의 심리적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색은 인간의 심리적 느낌에 따라 크게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으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따뜻한 색은 심리적으로 긴장을 풀어주어 여유를 가지게 하는 반면 차가운 색은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불안감이나 초조감을 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두 가지 요소가 고루 배치되어 따뜻하되 차갑지 않고 느긋한 것 같으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멈출 수가 없다. 이 모든 점의 조합과 시지각의 법칙과 색의 다양성이 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3. 창조와 팝(pop)
형태의 창조는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김세한은 건축가를 넘어서 즐거운 창조자로서 도시를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된 시점이 신이 반물을 창조한 후 더 없이 높은 곳에서 모든 사물을 관통하며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음이다. 이것을 건축도면에서는 조감도(鳥瞰圖)라고 한다. 자신만의 창조를 통한 희열을 느낌과 동시에 비록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몽환적 도시일지언정 일상의 삶에 찌든 도시민들에게 전해줄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화면 가득 채워 담고자 한다. 작가의 바람처럼 신의 능력을 빌려서라도 활력과 기쁨이 넘치는 도시, 꿈과 사랑이 늘 존재하는 공간을 선물해 주고 싶은 것이다.
대략 2012년 이전의 작품이 도시의 밤풍경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후부터는 도시의 야경과 더불어 팝아트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불빛만 가득한 도시에 현기증을 느낀 관객들의 요구(?)에 의해 사람의 온기와 자연(꽃)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했다 한다. 그 중심에는 건물 한 벽면을 가득 차지하는 거대한 화면이 버티고 서있다. 그곳에는 팝아티스트들이 주장하는 전위적 의미나 요소를 굳이 담아내기보다는 단지 그가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팝아트의 이미지만을 여과 없이 차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그만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적 창조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세상이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자신에게는 상처가 된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LOVE’를 통해 넘치는 사랑을 보여 주고,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로메로 브리또(Romero Britto)의 작품을 통해서는 흥겨움과 행복을,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와 색감을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앤디워홀의 작품에서는 기쁨을,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작품을 통해서 슬픔과 행복을, 키스헤링(Keith Haring)을 통해 즐거움을 전해주고자 한다.
어느 날, 김세한은 서울역 맞은편 대우빌딩 벽에 빛나고 있는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작품에서 감동을 받았고 그 형식을 작품에 차용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줄리안 오피의 전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왜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서울스퀘어에 선보여지는 작품은 군중을 바다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러나 군중속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듯 군중 속의 사람들은 제작기 다른 스타일, 이야기, 특유의 걸음걸이, 그날 아침의 복장 코디에 대한 결정 등을 지닌 개개인이며 그들의 움직임과 결정들을 통해 그들의 인생사가 나타나는 것을 표현하고 있고, 모든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급하게 지나가는 집단, 더 나아가서 군중 일부분이며, 곧 없어지는 또 다른 이들을 상징하고 있다. 난 이 건물을 스크린이 아닌 캔버스로 본다. 이야기나 영상물은 없으며 대신에 다이내믹하지만 은은한 파도와 같은 페인팅만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작품은 영원히 움직이고 변화할 것이다.”[줄리안 오피 전시 인터뷰]
줄리안 오피의 회화적 재현의 목표는 ‘얼마나 정확할까’ 가 아니라 ‘얼마나 대상에서 디테일을 제거할까’에 있다. 그래서 단순한 선과 형태, 그리고 강렬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김세한의 작업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온통 검은색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에서 무수하게 찍힌 점들은 도시의 빌딩 숲을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 여백처럼 남아있는 어둠은 건물을 지탱하는 강렬한 선으로 인식되어 진다. 선이나 색면은 그 밝기와 색채에 의해서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주변으로부터 구별된다. 이 구별성은 경계를 결정한다. 또한 에워싸여진 표현은 도형이 되려고 하고 반대로 에워싸고 있는 표면은 배경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형상과 배경은 공간적 위치, 윤곽, 밀도 등이 관계함으로 확연해진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카메라의 장 노출 기법을 통해 얻어지는 효과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질주하는 불빛을 통해 도시의 행복 또한 끊이지 않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그것이다. 비록 LED영상처럼의 움직임은 보여줄 수는 없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량들의 불빛에서 줄리안 오피의 생동감을 대신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또 한 가지, 작품을 한 점만 감상할 때는 발견하기 어려운 비밀이 숨어있다. 두 개의 작품을 나란히 붙여 걸어놓은 다음 양쪽으로 끝없이 질주하는 차량들을 쫒다보면 비로소 건물 뒤로 숨어 들어간 불빛들이 어떤 형상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작품의 키워드인 사랑의 도상이다.

4. 화룡점정(畵龍點睛)
작품은 마지막 단계인 바니쉬(Varnish)를 바름으로서 비로소 온전히 완성되어진다.
도시의 건물이 빛을 발하며 굳건히 서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정작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작품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면 대개의 작가들이 그어하듯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숱한 단계를 거쳐 어색한 부분에 수정에 수정을 가하며 완성 형태를 진행해 간다. 김세한도 예외가 아니다. 무수한 단계를 거친 후 어둠을 밝히는 빛과 여전히 남아있는 어둠과 질주하는 도시가 절묘히 조응함으로서 정중동(靜中動)의 감정이입이 최고조에 달할 때에야 비로소 바니쉬를 바른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완성을 위한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것이다. 김세한의 작품에는 노동으로 바뀌기 이전의 원초적인 고민과 유희로서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예술이 작가에 의한 수공예적 노동집약 산업중 하나라는 사실은 시대를 초월하는 진실이 아닐까?
그의 작품을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이유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그림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서양 미술사가 고민해 온 ‘회화적인 본질’ 즉, 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그 접근방식과 표현의 결과에는 매우 현대적 미감과 기술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세한은 아직 젊다. 젊은 작가로서의 장점은 언제든지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로인해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세한의 다음 작품이 자못 기대가 된다.
그대가 예술가임을 잊지 말기를, 용기를 잃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성공할 것이니,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에처럼 일하라.-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평론] 하명은 작가

탈회화적 post-painterly 추상의 경계로부터.

 김민성 (독립큐레이터)

20세기 초 미술계 전반을 아울렀던 다양한 사조들의 동시 다발적인 발현에는 공통된 개념 하나가 관통하고 있다. 다름아닌 모더니즘이다. 시각예술에서의 모더니즘이란 캔버스의 깊이감을 거부하고 평면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캔버스의 화면으로부터 공간적 깊이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는 운동을 의미한다. 자연을 대상으로 재현해 왔던 미술이 화면의 평면성을 돋보이게 해야 할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미술의 형식 가운데 하나가 추상이다. 당대 추상미술의 대표주자로 몬드리안과 칸딘스키를 꼽을 수 있다. 완벽한 비구상의 형태를 보이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적어도 이 둘은 각각 차가운 추상과 뜨거운 추상으로써 이전 미술과의 차이를 보이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이란 말은 아인리히 뵐플린이 <미술사의 기초개념 Principles of art history>에서 역설한 회화와 건축에서의 기초적인 미술사적 개념으로부터 차용된 표현이다. 이 책에서 뵐플린은 회화와 건축의 다섯 가지 개념을 짝지어 정리하면서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미술을 선적인 미술과 회화적인 미술이라고 구분하였고 이러한 구분은 그린버그에 의해 추상미술의 온도감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즉 구상적인 이미지 속에서의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이 추상미술로 넘어오면서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으로 그 개념들이 진화되었으며 모더니즘 하에서는 선적인 추상을 차가운 추상으로, 회화적인 추상을 뜨거운 추상으로 특징짓게 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은 세계대전의 역사적 흐름에 밀려 잭슨 폴록을 위시한 미국과 캐나다 작가들의 추상표현주의라고 하는 파괴적 혁신에 추상미술의 권좌를 내주게 된다. 하지만 하지만 “회화의 화면은 평면이다” 라는 슬로건의 관점에서 좀 더 엄격히 본다면, 화면의 평면성을 철저하게 수행했다는 추상표현주의 작품 조차도 지지체와 물감 사이의 미세한 간극이 남아 있다. 결국 이 추상의 단계는 보다 완벽한 평면성의 추구를 꾀하게 되며, 이때 등장한 것이 1964년 그린버그에 의해 기획된 전시에서 등장하는 탈회화적 추상 post-painterly abstract이다. 선적인 것과 회화적이라는 개념은 또 다시 추상미술 속에서 보다 세분화되어 적용된다. 추상표현주의가 회화적이라고 한다면 그린버그의 탈회화적 추상은 선적인 추상인 것이다. 탈회화적 추상은 경계가 뚜렷하고 색채 또한 명확하여 최소한의 환영을 제거하면서 추상표현주의가 맺고 있던 일말의 회화적 속성과도 단절하고자 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하명은 작품세계가 출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팝아트가 아닌 탈회화적 추상으로.

일반적으로 하명은의 작품은 팝아트로 분류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작가의 행위가 최소화되고 작품의 마티에르가 매끈하며 화면에서의 공간감을 제거하려는 점과 대량생산적인 요소들의 등장 등이 일견 팝아트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 속 이미지들이 주는 일종의 선입견에 의해 하명은의 작품들이 팝아트의 대표적 작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데, 이런 까닭에 그녀의 작품들은 쉽게 팝아트로 범주화된다. 또한 추상은 아니더라도 팝아트는 탈회화적 개념과 일맥을 이루고 있다는 점 역시 하명은의 작품세계를 팝아트로 범주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중요한 몇 가지가 간과된 오류라고 본다. 팝아트와 탈회화적 추상의 개념적 혼돈 속에서 하명은의 작품에 대한 진정한 가치가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하명은 개인전은 그녀의 작품들을 팝아트의 울타리에서 꺼내어 ‘탈회화적 추상’의 가치로서 재조명하는데 그 의미를 갖는다. 만일 그녀의 작품세계에 스스로가 언급했던 키치나 페티시만 존재한다면 팝아트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예술의 결과를 모방한다는 키치의 과정이 엄연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과정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이 과정은 보다 더 정교한 평면성의 탐구를 위한 것이며 모더니즘의 맥락을 잇는 추진체와도 같다. 따라서 하명은의 작품세계에서 팝아트적인 과정이 존재할 뿐 궁극적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화면은 ‘탈회화적 추상’ 혹은 광의로서의 ‘탈회화적 그림’ 인 것이다.
‘탈회화적 추상’은 선적인 요소와 선명한 색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개방적인 요소다. 뵐플린의 개방적 원리는 선적인 요소와 짝을 이루고 있지만 그린버그는 탈회화적 추상의 성격을 개방성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하명은의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탈회화적 추상의 원리다. 작가는 대가들의 작품으로부터 과감하게 잘라낸 이미지 조각들을 한없이 확장하여 붙여나갈 수 있도록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브러시 시리즈> 같은 경우, 두꺼운 경계선들과 명료한 색채들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지만 조각난 이미지들의 형태에 몰입하다 보면 이 이미지 조각들이 구성되어 있는 상황을 인지하는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의 대작을 패러디 했다거나 키치적으로 작업을 했다거나 하는 감상의 혼란이 생기는 결과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평면성 획득의 공로자인 미니멀리즘과 프랭크 스텔라의 변형캔버스를 떠올리기만 한다면, 하명은의 작품들을 미술사적인 시간의 축적 위에 세워진 가장 현대미술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보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가장 본질적인 요소만을 남기기 위해 최소한의 색채와 단순한 형태의 골격만을 표현함으로써 진정한 리얼리티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하명은의 작품을 통해 보다 노골화됨을 볼 수 있다. 대가의 작품들을 거침없이 재단해 나간 작가의 행위 때문이다. 작가 하명은은 맹랑하게도 대가의 작품들을 하나의 사물로 보고 그 사물의 본질을 뽑아 자신의 작품의 본질 일부로 재구성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자신의 작업 행위에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을 하나의 사물로 간주하는 것은 프랭크 스텔라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캔버스 바닥 위에 그려지는 그림은 어떻게 표현을 해도 화면과 그림 사이의 미세한 공간감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예 이 조차도 제거하겠다는 것이 스텔라의 변형캔버스다. 결국 변형 캔버스는 그림의 환영 효과를 없애기 위해 화면에 그려진 형태대로 캔버스를 잘라낸 그림을 사물로 만들어 버린 결과인 것이다. 하명은의 작품들이 이미지의 모양대로 잘라낸 것 또한 이러한 차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명은의 조각난 화면과 스텔라의 변형캔버스는 엄연히 다르다. 그녀는 대가의 작품들을 사물로 선택한다는 생각을 우선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명은은 가장 동시대적인 상황이나 경향을 담아 내는데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서양의 팝아트 작품들을 선택하고, 그 가운데서 가장 작품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이미지들을 잘라내어, 그것들을 물성에 가깝게 제작한 다음, 물리적으로 개방시켜 나감으로써 구상적이지 않은 형태들을 만들어 간다. 모더니즘에서부터 개념을 팔아야 한다는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이르기 까지 긴 역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모더니즘의 평면성 획득이라고 하는 미술사적 개념을 가장 현대미술적인 개념으로 풀어냄으로써 말이다.

탈회화적 추상으로부터의 확장.

하명은의 작품들은 ‘탈회화적 추상’에서 출발하고는 있지만 그 너머의 새로운 개념을 향해 전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매우 구상적인 이미지 요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을 추상으로 아우르는 것은 바로 하명은의 탈회화적 작품들이 갖는 확장성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 가운데 이러한 확장성의 전조를 보이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브러시 트리 2013> 이다. 브러시의 조각들이 변형캔버스 모습으로 얼기설기 엮어져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지더니 이 작품들을 또 다시 하나 둘 엮어내어 브러시 트리라는 대강의 평면 설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뵐플린의 다양성과 통일성 모두를 펼쳐 놓았다고 해도 될 만큼 작가의 개념은 이미 탈회화적인 추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명료한 색채의 가지들이 브러시의 이미지들로 구축된 작품들을 마치 열매처럼 혹은 잎사귀처럼 연결해 놓고 있다. 이 작품은 지극히 모더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며 그리로부터 현대미술의 다양한 개념들이 뻗어 나와 하명은의 작품세계가 앞으로 얼마나 더 확장되어 나아갈 지를 시사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탈회화적 추상으로부터 확장될 그 무엇에 대한 기대는 간헐적으로 제작된 인물시리즈나 낯익은 이미지들의 구상작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완성된 예술 작품을 하나의 사물로 간주하는 행위에 있어서 인물이든 구상이미지든 모두가 하명은 작가에게는 이미 오브제이다. 이는 선택과 구성 그리고 구성의 확장이 그녀 작업의 행위적 핵심이자 모더니즘의 평면성과 현대미술의 개념 수립이라는 사고의 행위적 핵심임을 가로지르는 가장 근본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세계다. 따라서 그녀에게 보이는 현실 속 리얼리티는 또 다른 추상이고 그녀의 추상들은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하명은 작가의 작품을 팝아트로 한정 짓기에는 작품은 물론 작가 자체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있어 많은 오류를 감수해야만 한다. 분명 그녀의 작품에는 일부 팝아트적인 생산의 익명성이나 선명한 선과 색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외형상의 접근일 뿐 개념과 작업 행위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탈회화적 추상과 그 추상을 너머 구상까지 아우르는 탈회화적 회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키치, 패러디, 페티시 등 사실 이 모든 것들이 팝아트의 속성이라고 한다면 하명은의 탈회화적 그림들은 팝아트의 속성을 함께 갖는 21세기형 모더니즘의 새로운 형식을 예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하명은은 탈회화적 작품세계에서 확장되어갈 그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김세한 작가 약력]

대구대학교 회화과 졸업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졸업
개인전 7회
2013 김재선 갤러리. 부산
2012 갤러리 전. 대구
2010 김재선 갤러리. 부산·서울
갤러리 진선. 서울
2009 드림갤러리. 서울
갤러리 전. 청도
2008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영천
기획전 및 단체전
2014 대구은행 137 기획초대전. 대구은행. 대구
Select fair. miami beach. USA
Night delight 김세한, 임승섭 2인전. 슈페리어 갤러리. 서울
2013 사실주의의 경계를 넘어서. 현대백화점. 울산
창작과 비평-평론가 선정작가 7인전. 아양아트센터. 대구
Asia Contemporary Art Show. JW Marriott Hotel. HK
2012 꽃꽃꽃展. 갤러리 전. 대구
컬렉션전. 갤러리 진선. 서울
2nd STUDIO. 시안미술관. 영천 외 다수
레지던시
2008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 작가
주요 작품소장
광주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외 다수

[하명은 작가 약력]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6회
2014 A master piece of painting-입체그림, 청화랑, 서울
2013 BRUSH TREE, 153 GALLERY
2012 A master piece of painting 2012, Gallery Toki-No-Wasuremono , Tokyo, Japan
2011 A master piece BRUSH, 가나아트 빌 갤러리
A master piece: 얼”-얼을 통한 진짜를 말하는 가짜, 갤러리 도올
2009 A master piece of painting Preznt 展, 갤러리 S101, Gallery Hyun
기획전 및 단체전
2014 뉴미디어 르네상스 전 – 양평군립미술관
명화의 향수 전, Nostalgia for masterpieces – AK갤러리, 수원
You Who 전-진화랑, 서울
2013 POP POP POP 전, 가나아트 부산
Young Power 전, 청화랑
회화를 넘어서 전-갤러리 그리다
2012 Ultra005 artfair, 일본
Asia Contemporary Art Show in HongKong, 홍콩
AHAF 2012- 웨스틴 조선호텔 외 다수
주요 작품소장
미스터피자 방배사옥 ‘미피하우스’, 구로 씨티병원 외 다수
– 장소 : 에스플러스 갤러리
– 일시 : 2015. 2. 24 –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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