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호展(갤러리 별)_20190509

//부산일보 기사//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헤아리는 이를 ‘예지자’라 부르며 존경한다. 하지만 누구나 예측 가능한 사건이 있다. 죽음이다. 이 지점에서 무한성과 유한성이 서로 얽힌다. 정신의 영원성과 육체의 소멸성이 만나 온갖 조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갤러리 별(부산 중구 중앙동)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조인호 초대 개인전’은 이처럼 시간과 죽음, 기억을 안고 있다. 별다른 타이틀은 없지만, 입구에 걸려있는 작품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가 24점의 전시작을 관통하는 주제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푸른 호수 위 배에서 손거울을 보는 소녀를 묘사한다. 청춘의 푸른 꿈과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나르시시즘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관객은 얼마 안 가서 그러한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게 된다. 그의 표정은 당혹스럽고, 노란 보트 역시 무언가 불안정하다.

역시 손거울에 자기 얼굴에 비추는 작품인 ‘청춘’ 속 여인은 제목과 다르게 중년으로 보인다. 화폭 전체가 어두운 색조인 데다 창가에 핀 꽃마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연인의 얼굴은 평온하고 웃음기마저 띤다. 세월을 관조하는 여유로움으로 다가온다.

‘녹슨 스마일’ 역시 통념을 뒤집는다. 으레 우리가 접하는 친절 운동 장려 배지(Badge)가 아니다. 병들고 외로운 소년의 슬픔 웃음이고, 틀니 뺀 100세 어머니의 얼굴 모습이다. 흐리게 그려 넣은 ‘hug me’라는 글자가 연약한 손길과 낮은 음성으로 우리에게 전해온다.

우주 은하수가 녹슨 안테나를 통해 낡은 수상기에 나타나는 ‘별 헤는 밤’도 시간과 거리의 관념을 깬다. 영원과 순간이 만나고, 광년과 지척의 거리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작가는 이제 희망을 얘기한다. ‘녹슨 로봇’ 시리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우리의 모습이다.

갤러리 별은 지난해 4월 부산 원도심에 둥지를 틀었다. 부산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전시를 연 조 작가는 “완결되지 않은 형상, 색조를 통해 관객에게 어디로 향할지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인호 초대 개인전=29일까지 갤러리 별. 051-744-2883.//부산일보 2019.5.20. 게재, 이준영 선임기자//

//작가 노트 중에서//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품고 있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은 간절하게 그리운 무언가를 품고 있을 때, 유한한 이 세계에서 녹슬어 가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작가 노트//

장소 : 갤러리 별
일시 : 2019. 5. 9. –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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