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展(에스플러스 갤러리)_131206

『책상만이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무엇이든 손으로 문지르고 닦아서 광택을 나게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청동 화로나 놋그릇들은 그렇게 닦아서 길을 들였다.
마룻바닥을 장롱을, 그리고 솥을 그들은 정성스럽게 문질러 윤택이 흐르게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오랜 참을성으로 얻어진 이상한 만족감과 희열이란 것이 있다.』 <이어령 ‘삶의 광택’>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남는다. 사람도 그렇지만 물건도 그렇다. 집 안에서 늘 봐 오던 물건이 어느 날 문득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생명 없는 사물일지라도 의미를 부여한 만큼 의미를 느낀다. 모르긴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서로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주위의 물건들이 마치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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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달맞이 고개에 있는 에스플러스 갤러리에서는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게 해 주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갤러리를 들어서면 좌측 벽면에 <Timeless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한’>이란 문구가 보인다. 전시장 안에는 축음기, 가구, 여행가방 등 오랫동안 손 떼가 묻은 물건들로 꽉 채워져 있다. 박물관에서 볼 만한 물건들이다. 이번 전시는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상업적인 사설 갤러리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전시다.

전시장 벽면에는 이진용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작품은 오래된 골동품을 레진(투명한 합성 수지)에 넣은 것들이다. 작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벼룩시장이나 골동품상에서 여러 물품들을 수집했는데 이 물건들을 레진 속에 넣어 박제로 만든 것이다. 순간 세상은 멈추고 레진 속 물건들은 영원히 그 형태가 보존 된다. 이번 전시 디스플레이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안혜채 큐레이터는 “벽면에 있는 이어령 교수의 문구처럼 레진 작품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닦아주면 조금 더 투명해 지면서 광택이 납니다. 신기하죠.”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마치 고백과도 같은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시력을 갉아먹어가면서까지, 인간관계의 폭을 좁히면서까지, 일상다반사에 대하여 무관심하면서까지 그가 성취하려고 하는 작업의 양과 질은 그와 같은 낭만주의적 예술가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예술가 상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것은 역설적인 사실이다.
그림이 가진 아름다움을 제외한다면, 남은 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묵시적 시공간이다. 작가가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 우리가 작품을 통해 이해하는 침묵과 응시가 흐르는 순간과 장소다. 전적으로 작가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그의 여정을 지켜보는 우리들로서는 각자 자기 안에 있는 온갖 감정의 호소에 스스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모든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작품 속 내재율을 능숙히 구사하고도 남는 작가의 확신에 찬 태도다.』<윤규홍의 글 중에서>

에스플러스 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안 쪽 벽면 모두를 약간 어두운 회색으로 칠했다. 마치 은은한 조명이 있는 집 안 거실 풍경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벽면에는 작품이 몇 점 걸려있고, 선반 위에는 샴페인과 축음기, 전화기, 여행가방, 가구 등이 놓여 져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축음기들은 모두 실제 소리가 나는 물건들이다. 녹음매체는 음반형태도 있지만 ‘주석박을 원통형에 말아서 만든’ 형태도 있는데 깨지기 쉬워서 조심스럽게 취급하고 있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오래된 추억의 물건으로 가득찬 집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각 물건들에는 손 떼는 물론 하나하나의 추억이 서리어 있는 것 같았다. 연말에 좋은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에스플러스 갤러리에서 내녀 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에스플러스갤러리
– 일시 : 2013. 12. 6 – 2014. 01. 29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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