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우리는 때때로, 걷는 동안에야 비로소 우리의 감정과 시선이 마음 깊은 곳에 닿습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 빛이 드리우는 결, 발 밑에 쌓이는 감정의 층위를 따라 걷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 풍경을 따라 가다 보면, ‘나의 삶’을 마주하게 되고, 걸어가는 여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게 됩니다. 이 전시는 그런 산책의 육체적, 정신적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며, 감정을 기억하고, 다시 나를 만나는 시간. 걷는다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조용한 문을 여는 일입니다.
“내면을 걷는 방법 Walking through Inner Landscapes”은 솔트 갤러리에서 이어지고 있는 ‘산책’을 주제로 한 두 번째 기획전입니다. 이번 전시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과 기억을 매개하는 통로로 바라보며, 각기 다른 세 작가의 시선을 따라 내면의 풍경을 천천히 걸어보는 경험을 제안합니다.
참여 작가인 안도경, 신예지, 손유하는 모두 부산대학교 한국화 전공 출신의 작가들로, 서로의 전시를 도우며 작업적 감수성과 우정을 함께 나눠온 동료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작업은 서로 다른 결을 가졌지만, 모두 자연이라는 대상을 통해 감정과 사유를 펼쳐간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이번 전시는 전시장 안을 실제로 ‘걸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산, 강, 바다의 흐름에 따라 공간이 이어지며, 관객은 그 안에서 세 작가의 감각과 내면을 차례로 마주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안도경 작가의 작업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통제된 자연’ 사이에서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내면의 흐름을 되짚습니다. 산과 바다, 정원을 통해 자연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비추는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냅니다. 중앙 공간의 신예지 작가는 일상의 산책 중 마주한 찰나의 감정을 그림으로 포착합니다. ‘녹색 눈꽃’ 시리즈는 초록이 가득한 풍경 속에서 떠오른 겨울의 첫 감각을 담고 있습니다. 감정과 계절이 겹쳐지는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내면의 산책을 이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손유하 작가는 자연을 ‘자아를 회복하는 공간’으로 바라봅니다. 숲과 하늘, 물결 속에서 자신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작업은, 관람객이 전시의 끝에서 조용히 자신을 마주하고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의 감정 여정을 따라 걸으며, 자연을 통해 자신만의 내면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안합니다. 산책이라는 느린 행위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임을 기억하며 이 봄, 솔트 갤러리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만나는 여정을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솔트 갤러리//

//안도경 작가노트//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감명을 받아 작업을 해오다가, 최근에는 사람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통을 통해 인연이 이어져오듯, 자연은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번 작업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매개체로서의 자연을 표현하고자 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물 따라 바람 따라 흐르는 것, 사로잡히고 고이는것, 새롭게 자라나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과정에서 인간(나)의 내면과 상대(나를 제외한 모든것)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풀어보고자 한다.
인간이 가장 누릴 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산과 바다, 그리고 통제 속에 가꾸어진 ‘사로잡힌 자연’은 정원으로 빗대어 보았다. 거칠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는 다양한 개체들이 녹아들어간 조화를, 정갈하게 가꾸어진 모습 속에서는 통제되고 있으나 건강하고 질서 있는 모습을 찾고 있다.
//신예지 작가노트//
‘녹색 눈꽃’
초록빛으로 물든 풍경 속에서 문득 겨울의 첫눈이 내리는 듯한 설렘이 스친다.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 녹음 속에서 눈꽃이 흩날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남긴다.
그저 풍경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의 감정과 이야기를 얹는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마치 한 걸음 더 걸어가는 산책 같다.
그날,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내 안의 세계로 깊이 걸어 들어가는 또 다른 여정.
그렇게 그린 풍경 속에는 그때의 빛과 공기 그리고 그 감정들이 묻어 있다.
어느새 나의 마음에 녹색이 스며든 눈꽃이 내려앉는다.
//손유하 작가노트//
산책은 단순히 발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내면 깊숙이 가라앉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우리가 스치는 공간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품고 있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기억과 감정이 스며들며 비로소 ‘집’이 된다. 자연은 그런 집이 되어준다.
바람이 속삭이고 나무가 손짓하는 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사회의 무게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는 고요한 숲길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흐르는 물결과 피어오르는 구름이 삶의 방향을 가만히 일러준다. 반복되는 일상과 소란스러운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자연은 묵묵히 우리를 제자리로 이끈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아무런 꾸밈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된다.
장소 : 솔트 갤러리
일시 : 2025. 04. 22 – 05. 18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