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이 전시는 하나의 제단이다.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름을 갖지 못한 감정들을 위한 형상을 잃고 희미해진 기억을 위한 그리고 사라졌지만,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존재들을 위한 무형의 제단.
나는 오랫동안 맹인처럼 작업해왔다. 머릿속에 기억과 형상을 상기시킬 수 없다는 것
그 혐오스럽던 아판타시아는 내게 감각의 문턱을 다시 짓게 했고
나는 보는 것이 아닌 느끼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리하여 나의 예술은 형상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다고 여겨진 것들에 감각적 흔적을 남기는 일로 변해갔다.
빛이 사라진 방에서 나는 색의 농도와 진동, 감정의 밀도와 기압을 더듬었다.
그림은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의 침전물’이 되었고 조명은 그 침전 속으로 비추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병 안에 담긴 파편들은 감정의 편린이며 주파수로 구성된 소리의 파동은 내 무의식이 오래전부터 반향하던 내면의 목소리였다.
이 전시는 명확한 주제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의미화되지 못한 감정들.
남겨지지 않았기에 더욱 위태로운 존재들을 붙들고자 하는 긴 호흡이다.
나는 회화로 말하고 조명으로 기도하며 소리로 봉인된 시간을 깨워 낸다.
영상은 그 모든 무형의 단면을 가로지르며 또 하나의 ‘기억의 문’을 연다.
결국 이 모든 작업은 존재의 가장자리에 놓인 것들에 대한 증언이다.
그것은 결코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건함으로 가득 차있다.
나는 어떤 신을 대신하여 제단을 쌓지 않는다.
나는 이 세계에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위해 작은 제단을 만든다.
이 전시는 눈에 보이지 않고 담기지 않는 휘발적인 것들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자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우리 안에서 ‘감각의 방식으로 남아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제의적 공간이다. 나는 지금 ‘현현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자’로서 이 자리에 선다.
그 또한 자기 안의 무형의 진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조용히 담아나간다.

//인터뷰 내용//
휘발되는 기억과 감정을 색과 빛 그리고 소리로 다시 환기시키는 작업을 하고있는 김재영 작가입니다. 저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아판타시아라는 조건 속에서 저에게 선명한 상상과 기억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흐려진 기억의 잔향과 감정의 파편이 오히려 제 안에 또렸하게 남았습니다. 그 흔적들은 색과 빛 그리고 소리로 불러내며 형상과 무형의 경계 속에서 휘발되는 기억을 다시 하나의 풍경으로 태어나는 시간을 탐구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조각들을 쌓아 올린, 기록이자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작은 기념비입니다.//김재영//
장소 : 홍티예술촌
일시 : 2025. 8. 27 – 10. 1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