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
버려지는 종이, 따뜻한 예술이 되다: 이상식 작가가 보여주는 물성의 마법
이상식 작가는 부산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든든하게 중심을 지켜온 중진 작가입니다. 때로는 지역 미술의 문제점을 향해 날카로운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분이지만, 막상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전혀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과 솔직함이 가득합니다. 화려한 기교나 유행을 좇기보다는, 낡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가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주인공은 바로 ‘종이’입니다. 특히 전시 주제인 ‘일회용의 하루 紙(지)’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한 번 쓰고 쉽게 버리는 종이들을 모아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첨부된 작품 사진들을 보면 그 매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반원 모양의 종이들이 마치 물고기의 비늘이나 오래된 집의 지붕 기와처럼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커피 거름종이(필터)’입니다. 작가는 종이를 반듯하게 오리거나 인위적으로 색을 칠하는 대신, 커피가 스며들었던 자연스러운 갈색 얼룩과 종이 특유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려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듯한 이 거름종이의 결들은 진짜 나뭇가지, 붉은 해와 어우러져 한 폭의 따뜻한 풍경화가 됩니다.
또한,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올록볼록한 ‘계란판’ 역시 작가의 손을 거치며 훌륭한 입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푹신하고 거친 종이판의 성질을 숨기지 않고 캔버스 위로 당당히 끌어올려, 평면이었던 그림을 만져보고 싶은 입체적인 공간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깊이가 있는 액자 틀 속에 거친 나뭇가지를 세우고, 푸른빛이 스며든 종이를 배치해 마치 작은 연극 무대 같은 신비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작가는 억지로 재료를 가공하려 하지 않습니다. 거름종이든, 계란판이든, 나뭇가지든 그 물질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고유한 성질을 존중하며 그저 캔버스 위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도록 자리를 마련해 줄 뿐입니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이벤트가 빠르게 소비되는 요즘 시대에, 쓸모를 다해 버려질 뻔한 일회용 종이의 소박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이상식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물성을 살려낸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한참을 머무르며 편안한 사색에 잠기게 됩니다. 평범한 종이의 결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메마른 우리 마음속에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장소 : 갤러리 공감
일시 : 202. 4. 17 – 4. 3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