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1//
움직이지 못했던 육체.
시퍼렇게 맛없어 보이던 고깃덩어리 같던 나의 오른손.
그 시간에 나는, 나의 오른손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영혼이 사라진 듯한 손은 불편한 감정들을 쏟아내지도 못한 채, 고요히 머금고 있었다.
뼈의 통증은 낯설 만큼 생생했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은 그 손의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응고되었다.
어느 낯선 한순간.
나는 아마도 슬픈 채식주의자를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몸을 잃어버린 감각 속에서 나는 다시 그리는 행위가 무엇인지, 회복의 색이 어떤 빛으로 다가오는지를 되묻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나의 작업은 상처가 닫혀가는 시간의 질감과, 그 속에 머무는 감정의 결을 기록하는 일이 되었다.
색과 선, 여백의 리듬을 통해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붙잡고, 회화가 어떻게 몸의 기억을 회복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작가 노트 2>
지난 여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오른손에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또 한 번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 오른손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감정의 미세한 결을 느끼게 해주었고, 세상과 교감하게 해준 가장 오래된 감각의 통로였다. 그 손이 감각을 잃고 멈추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오른손이 얼마나 친절한 존재였는지를.
내 작업은 일상 속에 머무는 감정들을 천천히 담아두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반복되는 선과 여백의 리듬, 서서히 침잠하는 색의 층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시간이 겹겹이 스며드는 공간을 그려왔다. 형태보다 감각을, 서사보다 결을 따라가며 화면 안에 오래 남는 미세한 진동들을 붙잡아두고자 했다. 이미지의 완성보다 그것이 형성되고 겹쳐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 그것이 내가 작업을 대하는 방식이다.
상처를 머금은 채 불친절해진 오른손의 시간 속에서, 나는 천천히 변화하는 감각의 흐름을 더듬어왔다. 감각을 잃어가는 신체와 마주하는 일은 한 사람의 경험인 동시에, 무심한 일상 속에서 무뎌져가는 오늘의 감각을 비추는 일이기도 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사람들은 상처에 익숙해진 채 살아간다. 통증은 쉽게 지나쳐지고, 감정은 충분히 머물지 못한 채 사라진다. 나의 작업은 그 흐름을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워지고 다시 쌓이는 시간 속에서 상처와 회복의 감각은 화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회화와 설치, 영상과 텍스트는 하나의 감각 구조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잃어버린 감각의 書’는 잊혀진 감각들과 침묵 속에 남겨진 마음들을 기록해나가는 하나의 서(書)에 가깝다. 전시 공간 안에는 회화와 오브제,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서로의 흔적을 머금은 채 놓여 있으며, 감정과 시간의 층위는 느리게 이어지고 겹쳐진다.
불친절해진 오른손은 한동안 아문 상처의 흔적들을 머금은 채 느리고 서툴게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낯선 회복의 시간들은, 작업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각의 범위를 천천히 열어가게 할 것이다.//정연경//
장소 : 갤러리 화인
일시 : 202. 5. 16 – 5. 25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