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이 작업은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하나둘 부산을 떠났다. 누구는 일 때문이라고 했고, 누구는 별말 없이 갔다. 역까지 배웅한 적도 있고, 뒤늦게 소식만 들은 적도 있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명분은 내게 없었다. 다만 그들이 비운 자리를 오래 바라보게 됐다. ‘탈(脫)부산’은 통계 속 현상이기 전에, 내겐 익숙한 얼굴들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이 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2022년, 장전동 패션거리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 친구들이 남긴 빈자리가 도시의 표정과 겹쳐 보였다.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이 공간이 비워지고 나면, 여기 무언가 있었다는 사실은 누가 기억할까.”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다. 굳이 기억해야 하는가. 도시는 변하고, 사람은 더 나은 곳으로 옮겨 간다. 새 건물이 서고 생활은 편리해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되물어야 한다. 누구에게 좋은 삶인가. 아파트가 들어서는 사이, 수십 년을 그 골목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건물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곳에 삶을 걸었던 사람들의 자리가 함께 지워지는 일이다. 낡은 벽지 한 장, 녹슨 문고리 하나에도 누군가의 시간이 담겨 있다. 기억이 필요한 이유는 과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산이 왜 소멸의 위기에 놓였는지, 상권이 왜 비었는지, 어떤 구조가 사람들을 떠나게 했는지를 기록하지 않으면, 우리는 원인을 모른 채 결과만 보게 된다. 그리고 같은 일이 다음 동네, 다음 도시에서 반복된다.
사람은 편리함만으로 살지 않는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것이 삶의 토대가 된다. 뿌리를 모르는 곳에서 좋은 삶이 가능한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아야, 무엇을 지킬지 알 수 있다.
이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2026년 2월, 영도와 동구, 서구, 중앙동 등 부산의 소멸 위기 지역을 직접 걸었다. 통계와 지도가 아니라,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일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역사학자의 고증으로 그 장소가 지녔던 본래의 정체성을 복원하고, 과거의 사진을 지금의 빈집과 쇠락한 거리에 다시 세웠다. 과거와 현재를 한 프레임에 겹쳐, 이 공간에 시간이 쌓여왔다는 사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이 방법을 ‘재-사진화(Re-photography)’라 부른다. Rephotography 또는 repeat photography는 동일한 장소를 두 번 촬영하되, 두 이미지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두는 행위다. ‘그때와 지금(then and now)’이라는 통시적 시각으로 특정 지역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Rephotography라는 용어는 1977년 Mark Klett, Ellen Manchester, JoAnn Verburg가 진행한 Rephotographic Survey Project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19세기 미국 서부를 촬영한 기존 사진들과 동일한 장소를 다시 촬영했다.출처: whatmakeart
이것은 재현이 아니다. 복원도 아니다. 사라지는 것에 최소한의 존엄을 남기는 일이다.
과거의 기록물을 현재의 장소에 직접 대면시키고, 이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포착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적 사료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작업은 3단계의 체계적인 절차로 구성된다.
[역사 고증] → [현장 촬영] → [재-사진화]
역사학자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장소를 선정하고, 과거 부산의 풍경을 담은 미술품과 사진 자료를 수집한 뒤, 현재의 현장에서 이를 다시 촬영한다. 이 과정은 작가의 주관적 감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제3자가 작업의 과정과 결론을 따라올 수 있도록, 작업의 구조를 함께 갖추는 것이 이 작업의 방향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공간이 가진 ‘물질성’과 ‘시간’이다. 오늘날 부산의 골목에서는 사람의 손때가 묻은 낡은 주택과 그 곁에 솟아오르는 신식 아파트가 공존하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의 삶이 겹겹이 쌓인 공간과 규격화된 편리함이 충돌하는 이 지점은, 우리 도시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동시에 드러낸다.
나는 두 풍경이 교차하는 그 어긋남 속에서, 도시의 회복이란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쌓인 시간의 지층을 명확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추억의 지층’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은 특정 시공간의 가치를, 비교와 설치라는 객관적 방법으로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전시는 사라지는 것들을 슬퍼하는 목적이 아니다. 기록을 통해 사회적 상실을 가시화하는 일이다.
이 전시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언젠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지층이 되어, 미래 세대에게 이 시간이 존재했다는 새로운 증거로 남을 것이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서 시작한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작업이 우리가 선 땅 아래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시간의 지층이 있었는지를 전하는, 가장 정직한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정안용//
장소 : 낭만시간연구소
일시 : 2026. 9. 5 – 9. 27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