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展(리빈 갤러리)_20190126

//작가 노트//
지난 반세기동안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 나는 거의 매일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난다. 밝아오는 새벽녘 일출의 장엄함을 오롯이 경험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언제나 태양을 마주하는 시간은 감사한 마음과 숙연함이 저절로 우러난다. 나에게 태양은 절대 긍정과 믿음, 희망, 에너지, 밝음의 상징이다. 태양은 나에게 어떤 요구나 보상을 바라지 않으면서 빛과 열과 갖가지 유익한 미량원소들과 플라즈마라는 생명력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나에게 태양은 신앙도 철학도 아니며, 삶 자체이다.

어떤 선입견도 고정 관념도 없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형태의 내 모습이다. 해가 뜨는 바다, 이른 새벽, 동녘, 파스텔 톤의 은은한 여명, 장엄한 일출, 눈부신 은빛 파도는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더없이 충만하다. 위대한 태양의 시공 속의 존재들에 대한 절대적 헌신과 끝없는 무한의 축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정화된 마음으로 바라본다.

2018년 12월 20일 오후 서실에서

//작품 설명//

  1. 내재의 만종
    2017년 5월 12일 새벽에 부는 바람은 서있기 조차 벅찬 강풍이었다. 일엽편주 조각배들이 격랑에 휩싸여 춤추듯 요동치고 있었다. 초망원 렌즈로 가까스로 어렵게 구도가 잡혔다 싶으면 곧이어 질곡 깊은 파도더미가 피사체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고 작업 중이던 어부들은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시종 어렵게 촬영하면서도 감은 상당히 좋았다. 무언가는 모르지만 내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강하게 내재해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밀레의 만종이 떠올랐다. 서양의 밀레는 석양아래서 만종을 그렸지만 동양의 내재는 일출아래서 만종을 만났다. 한동안 이 작품을 접해보신 모든 분들은 한결같이 ‘밀레의 만종이 연상 된다’ 며 경외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영역은 다르지만 제목을 내 나름대로 ‘내재의 만종’ 이라 붙여 보았다.
  2. 황제
    일출작품은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99%의 기회로 얻어진다. 걸작이 만들어지기 위한 준비 작업은 현재 상황에 대한 올바른 예측과 통찰, 정확한 대응이다. 촬영의 한 동작이 시작되는 순간 5단계 10단계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순간순간 발 빠르게 피사체를 쫓아간다. 1초, 1/10초, 1/100초가 승패를 결정짓는다. 태양도 고깃배도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갈매기나 어부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놓치면 안 된다. 포토샵이나 인화작업이 아니다. 10연사 12연사 다라락, 다라락 하는 순간 이미 작품의 끝을 보는 것이다. 황제는 그렇게 해서 자연과 인간의 오묘한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3. 환희
    일출작품은 어차피 자연이 차려준 거룩한 밥상이다. 기본적인 촬영준비만 갖춰지면 환희같은 뜻밖에 행운을 가끔 만난다. 물론 성공도는 촬영횟수에 비례한다. 자연의 조화로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매순간 순간 놓치지 않고 정석대로 찍고 찍다보면 어느 날엔가 예상 밖의 명작도 얻어질 수 있다. 대개 초 망원으로 찍은 작품들은 거의 후 보정을 거치지 않아도 생생한 현장감을 담고 있기에 원경보다 비교적 만족도가 높다. 허나 일출의 진행은 상당히 빠르고 한순간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물쭈물하거나 느긋하게 음미할 시간이 없다. 작업 종료 시까지 오로지 긴장과 집중의 연속이다. 말 그대로 자연을 한정된 공간속으로 옮긴다는 건 무상하지만 원하고 구하면 반드시 조만간 이루어질 수 있다. 자연의 일품적 혜택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4. 대광
    일출작업이 쉽지 않은 것은 내가 선택한 인물이나 고정된 피사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요구사항도 전혀 반영이 안 되는 한마디로 감 잡을 수 없는 깜깜이 미지의 세계이다. 따라서 약속된 연출이나 고정된 피사체를 찍는 여느 작품 성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결론은 셔터를 누르는 것 외에는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품은 내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만들어져있다. 이렇듯 명품수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단순히 이론적이거나 즉흥적 생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대중들이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은 대자연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성과 겸손과 숙연함 경건함으로 태양 앞에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장소 : 리빈 갤러리
일시 : 2019. 1. 26. – 2. 27.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