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일기展(갤러리 이듬)_20190314

//보도 자료문//

  • 전시제목 : 봄의 일기 전
  • 전시장소 : 갤러리 이듬
  • 참여작가 : 강영순, 구경환, 구성연, 김난영, 김선애, 김양순, 오순환, 이주희, 정철교
  • 전시기간 : 2019년 3월 14일(목) – 3월 31일(일)
  • 초대일시 : 2019년 3월 14일(목) 5pm
  • 관람시간 : 월요일 휴관 화요일-목요일 10:00am – 18:00pm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꽃이 만개하고 새로운 생명들이 싹트는 봄이 왔습니다. 갤러리 이듬은 새 봄을 닮은 봄의 일기 展을 준비하였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춘 9명의 작가들이 준비한 봄의 일기 전에는 다양한 봄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보도 자료문//

//구성연//
팝콘이 매화 또는 벚꽃처럼 피어있는(아니, 사실은 매달려 있는) 구성연의 사진들은 언뜻 보면 현실의 꽃나무를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 또 형식상 조선시대 사군자인 매난국죽(梅蘭菊竹) 중 매화도의 패러디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이 ‘팝콘-꽃’ 사진은 현실의 특정 꽃과도, 문사취미의 매화도와도 ‘상징적’ 관련성이 없다. 그녀의 ‘팝콘-꽃’ 사진에서 그 ‘꽃을 닮아 보이는 형상’은 이 글에서 그것의 지시어가 ‘매화’에서 ‘벚꽃’으로 갈팡질팡해야 할 정도로 정체 없는 것이고 현실의 어떤 사물로 규정될 수 없는 가상이다. 또 회색조의 기품 있어 보이는 배경 위로 봄날의 꿈처럼 아련하게 떠 있는 이 ‘꽃을 닮은 가상의 형상’은 시각적으로는 분명 문사의 취향을 자극할 테지만, 상징적 질서의 차원에서 사군자의 절개(切開) · 청렴(淸廉) · 청빈(淸貧) · 호방(豪放) 등등과는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팝콘 알갱이들은 평범한 섭취의 용도성에서 벗어나 미적 사물이 되어 있으나, 그 미적 사물은 자연의 어떤 꽃과도 친족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인공의 미적 사물이다. 그러나 또한 이 인공의 미적 사물은 기존 전통의 상징적 기표를 차용하면서도 그 속에 어떤 상징적 질서의 기의도 담지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기대를 오히려 배반한다는 점에서 말의 직설적 의미에서 ‘無-의미’, ‘無-가치’의 사물이다.

//오순환//
오순환은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밤중, 작업을 하다가 배가 고파졌단다. 먹성이 좋지 않은 그가 배가 고팠다는 것은 정말 배가 고팠다는 것이다. “시골 작업실에 혼자 있으면서 저쪽 부엌에서 끓인 김치찌개 냄비를 들고 캄캄한 마당을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가로질러 가는데 아, 지금의 내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거라요.” 아니 그는 온전하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말하는 이미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담고 있는 감각이 꽃 사태처럼 쏟아졌다. 거기에는 한밤중의 배고픔이 있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가 있고, 얼큰한 냄새가 나는 뜨거운 김치찌개 냄비가 있고, 발밑에서 돌부리를 숨기고 있는 캄캄한 마당이 있다. 그런데 어두운 마당을 뜨거운 냄비를 들고 가로지르는, 먹고자 하는 중생의 가감 없는 모습이 왜 아름다우며 온전한 것일까.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인가. 오순환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깨달음의 최종 단계는 무엇일까.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미 다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저 높은 곳에 닿는 것이 아니라 이 낮은 곳이 바로 그 자리라는 것을 단박에 아는 것이다.” “진짜지요? 그런데 햐-, 내 생각하고 똑 같네.” 하지만 정말 그러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깨달을 것이 애초부터 없다면, 그리고 이미 다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번민하는가 말이다. 그때 오순환이 그림으로 내미는 것이 꽃이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니 확실히 있는 것과, 있는지 불분명한 것이 있다. 이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표현하는 것이 꽃이다.” 말할 수 있는 것 너머, 확실히 있는 것 너머에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고통스러워 하고 번민할지라도 그것 너머, 아니 이미 그것 속에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염화시중의 미소 같은 것이 꽃이다. 이것이 그가 그토록 꽃을 그리는 이유다. 그가 꽃을 들어 보인다. 우리는 웃는다. 그래 꽃은 좋다. 참 좋다. “세상은 이렇게 피어 있다. 꽃이 피어 있듯 어느 것 하나 완전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기쁨과 괴로움 이 모두가 지금 모습 이대로 환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아마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오순환 작업노트) 오순환의 작품에서 꽃은 사람이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의 모양과 사람의 모양이 비슷하다. 아니 똑 같다. 한밤중 냄비를 들고 마당을 가로지르던 오순환도 꽃이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꽃이고, 이 글을 쓴 나도 꽃이다. 우리는 이 말 속에서 상승하고, 그의 꽃 그림을 보면서 더욱 상승한다. 그날 우리는 만추의 산속 음식점에 앉아 있었다. 비가 좀 뿌렸고 바람이 불었다. 창밖 저쪽 허공에서 낙엽 하나가 희한하게 핑그르르 돌면서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는 “저기 나비가 날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 그것은 꽃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도 꽃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가을이 절정에 이른 무릉도원에 앉아 있었다.

//정철교//
특유의 원색적인 화면으로 만나는 서생의 풍경들이다. 어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작가는 멀리 보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화면의 중앙에 배치해 놓는다. 또한 노란하늘과 푸른 바다 너머 송전탑들이 아스라이 지나간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흰 캔버스에 붉은 선으로만 처리된 폐가가 을씨년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집을 삼켜버린 넝쿨들은 고단한 어촌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철교의 풍경은 삶이 탈각된 ‘형식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삶의 문제가 비로소 드러나는 현실적인 ‘장소로서의 풍경’을 그린다.//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19. 3. 14. –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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