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화展(사상 갤러리)_20190325

글 김채석

나는 무언가 어수선하게 지나가던 지난해 말 내가 살고 있는 부산시 사상구청의 전시공간인 갤러리를 찾아갔다. 평소 연극 관람도 즐겨하고, 도서관도 자주 이용하며 식물 탐구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등 나름의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게 있다면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그러한바 세밑에 찾아간 갤러리에는 사상문화예술인협회의 ‘2016 새로운 동행전’이 열리고 있었다. 달리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공간에 전시하는 관계로 김명분의 ‘무량대복’, 김소진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억새바람’, 김영숙의 ‘어느 멋진 날’, 김영희의 ‘하노이의 꿈’, 박진용의 ‘일출어’ 등 수많은 작품을 접했는데 한 번 더 눈길을 끈 작품이 있었다. 바로 최성화의 장미 그림 ‘풍요로움’이 그것이다.

이유라 하면 동안의 장미는 이발소 그림처럼 아름답고, 곱고, 예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포근한 살롱풍으로만 의식하거나 인식해 왔는데 최성화의 장미는 붓 끝이 주는 터치는 거칠고 투박했다. 힘이 느껴졌다. 마치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 그림을 보러 갔다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만난 느낌이랄까. 참으로 남달랐다.

이렇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화가 최성화는 동안 수차례의 개인전을 비롯 공감-미의 하모니전, 감성의 소통전, 새로운 동행전 등 많은 전시를 통해 중견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왔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시 개인전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 자신을 스스로 위리안치 시킬 수 없어 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가을에 ‘국화 옆에서’를 노랬던 미당 선생은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 었고, 스물세 살의 한 시인을 키워 주는데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말했는데 갤러리에 가는 길은 8할의 꽃잎을 떨군 벚꽃이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그렇게 고와 보이지는 않았다. 꽃은 지고, 봄은 가야 맞다. 하지만 범부의 마음은 작은 욕심으로 인해 모든 게 붙잡고 싶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잠시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금세 푸근하고 정겹다. 벽을 따라 긴 담장에 걸쳐 피어 있는 덩굴장미처럼 밝고 맑게 다가왔다. 아니, 다가갔다. 이해인 수녀가 자신의 詩 ‘오월의 장미’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하늘은 고요하고/땅은 향기롭고/마음은 뜨겁다/오월의 덩굴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사소한 일로 울적할 적마다/밝아져라 맑아져라(하략)”

정말이지 환한 마음으로 그림 하나하나를 감상하다가 한 송이로 클로즈업된 ‘내 마음의 전부’라는 작품 앞에서 갑자기 오래전에 당신의 어머니 곁으로 가버린 아버지의 잔영이 스쳤다. 아버지는 평생을 교직에 봉직하셨는데 음력 5월 8일에 태어나 양력 5월 8일에 지난한 삶의 모퉁이를 돌아가듯 말없이 떠나셨다.

당시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행했는데 집의 정원에 어떤 성취감 같은 노란 장미, 당신은 영원한 나의 것이라고 말할 것 같은 흑 장미, 열정으로 넘치는 붉은 장미, 누구나의 당신에게 어울릴 것 같은 흰 장미의 꽃도 꽃이지만 향이 그윽했다. 찾아온 문상객마다 상갓집이 아니고 무슨 가든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있어서 오월의 장미는 아버지의 장미였다. 달리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에 꽃의 여왕을 말하라면 단연 장미라 할 것이다. 그러한 장미를 소급해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말 ‘새로운 동행전’에서 거칠고 투박할 정도로 힘을 느꼈던 그 장미의 연장선상에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개성이 강한 장미를 그린 화가 최성화도 그렇게 힘이 넘칠까. 결론은 다르다.

이유는 그림마다의 이름에 있었다. ‘추억 속의 감미로움’, ‘그대 눈 속에’, 산 넘어 저곳’, ‘그대 나를 사랑하다면’, ‘환한 미소’, ‘달콤한 향기’, ‘당신의 그리움’, ‘하나의 마음’, ‘간절한 바람’ 등이 그것으로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나 그리움을 담은 서정과 함께 시적 감성을 지닌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실지의 모습 또한 한 송이의 환한 장미와 흡사 다르지 않았다.

끝으로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말로 갤러리에서의 짧은 소감을 대신한다.//글 김채석//

장소 : 사상 갤러리
일시 : 2019. 3. 25. – 3. 3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