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애展(갤러리 메르씨엘비스)_20200304

//보도 자료문//
관람객을 작품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강한 생명력의 작가 허경애, 그녀의 ‘봄色’展이 3월 4일부터 4월 11일까지 벚꽃이 만개한 봄날에 해운대 달맞이 갤러리 메르씨엘비스에서 열린다.
현재 프랑스 에브르에 살면서 작업하고 있는 허경애 작가는 1977년생으로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2003년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 했다. 서양화 전공 후,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조형예술석사까지 공부한 작가는 2011년 첫 개인전을 파리에서 열었다. 서양적인 소재인 아크릴물감을 재료로 사용해 작업을 하지만, 물감을 긁어내는 행위 뒤에 보여 지는 다채로운 색감의 흔적들은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캔버스 나머지 여백과 조화를 이루어 한국적인 여백의 미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원색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는 자연을 모티브로 파도를 담은 푸른색, 가을을 담은 붉은색 등 좋아하는 원색을 마음껏 사용하여 평면에 물감을 바르고, 말리고, 바르고, 말리고는 작업의 반복을 통해, 층층이 여러 겹 물감을 쌓아 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감이 말라 평면적인 그림이 되면, 칼을 사용해 마른물감을 혼신을 다해 긁어내기 시작한다. 이 작업의 과정은 마치 단단한 돌을 긁어내는 소음을 막기 위해 귀마개를 착용하고 묵묵히 내면의 고민을 긁어내듯이 수행을 이어 나간다. 기나긴 시간 동안 반복해서 긁어내는 퍼포먼스를 통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면서, 작가의 생명력과 숨결이 캔버스 위에 가득 피어난다. 그렇게 긁어 일어난 마른 물감의 파편들이, 그림에서 살아 숨 쉬듯 형형색색으로 떨어져, 또 다른 모습으로 캔버스에 자리 잡으며, 추상적인 작품이 되어 쌓여 가면서 한국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학 력//
파리소르본느 1대학 조형예술 석사
파리쎄르지 국립미술학교
서울 성신여자대학원 판화학과
국립전남대학교 서양화과 학사

주요 개인전 (한국, 프랑스, 헝가리, 홍콩)
2018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서울, 한국
2018 Galerie Berès, Paris, France
2017 공아트스페이스, 홍콩
2016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서울, 한국
2015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서울, 한국
2014 갤러리 칼만 마크라리, 부다페스트, 헝가리
2014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서울, 한국
2013 갤러리 칼만 마크라리, 부다페스트, 헝가리
2012 갤러리 칼만 마클라리, 부다페스트, 헝가리
2012 갤러리 라이트, 서울, 한국
2012 파리 한국문화원, 파리, 프랑스
2012 갤러리 하야사키, 파리, 프랑스
2011 갤러리 칼만 마클라리, 부다페스트, 헝가리
2011 갤러리 레마, 툴루즈, 프랑스
2011 갤러리 이코노클라스트, 파리, 프랑스
2010 금호 갤러리, 광주

//작가 인터뷰(magazineartmine 발췌)//
Q. 처음에는 ‘색’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벗겨진 흔적’에 주목하게 되네요. 긁어내는 방식과 방향에 따라 드러나는 다양한 표정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아요.

A. 제 작품은 가까이, 천천히 볼수록 다른 느낌이 전해지죠. 언뜻 붓질이 오간 회화 작품인 것 같지만 수백 가지 컬러가 묘하게 섞인 추상 회화이면서 설치 작품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작업을 시작한 것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 오고 난 이후부터 입니다. 파리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존 작업에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그려놓은 그림을 지우거나 캔버스를 찢고, 분해하는 등 개념 예술과 디지털 영상 작품까지, 다양한 영역을 시도했지만 만족스럽지가 않았고 결국 다시 캔버스와 물감 앞으로 돌아왔어요. 문득 회화 작품에 ‘해체’와 ‘파괴’라는 행위를 접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학 전,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는데, 판화 작업 방식인 ‘긁는 행위’를 생각해냈죠. 이후 해체의 개념에 무게중심을 점점 두면서 마티에르는 점점 두꺼워졌고, 색을 입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색을 벗겨내 새로운 색을 발견하는 작업에 이르게 된 것이죠.

Q.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티에르를 완성하나요? 색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을까요?

A. 마티에르를 빠르게 더욱 드라마틱하게 올릴 수 있는 비법은 없어요. 그저 물감을 하나씩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는 거죠. 긁어 내기 전 준비 작업 만 수 여 일을 소요하고, 여러 작품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죠. 색은 본능과 직감에 따라 결정한 것 아닙니다. 작품을 구성하기 전 미리 예측을 하죠. 벗겨낸 흔적과 질감까지 계산한 후 그에 맞춘 컬러를 차례로 칠하죠. 모노톤으로 아크릴 물감 층을 올리기도 하고,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든 후 칠하기도 합니다. 물감을 올리는 방식은 매번 다른데, 어떤 것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뿌리는 식으로 물감을 칠하고 말립니다. 대략 30층에서 70층까지 올리는데, 최근 들어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어요. 물감을 바를 때는 반드시 종이 위에 어떤 색을 올렸는지 표시합니다. 그런데 색을 이론적으로 조합했다고 해서 긁은 후의 결과가 예상과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어요. 매번 의도하지 않았던 색이 드러나죠. 필연과 우연의 결합, 논리와 비논리의 집합이 일구어낸 색. 그런 흔적을 마주했을 때 희열과 쾌감이 느껴져요. 두꺼운 마티에르를 긁어낼 때는 바닥에 비닐을 깔고 캔버스를 세워서 선 자세로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 비가 내리듯 가루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죠. 가루는 직접 제조한 특수한 풀로 다시 캔버스에 붙여야하기에 색깔, 캔버스에 따라 표기해 구분합니다.

Q. 색 파편이 떨어질 듯 말 듯 붙어 있는 모양 덕분에 더욱 작품이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A.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캔버스 끝에 매달린 것처럼 표현했는데, 툭 떨어질까 불안해하시더라고요. 특수 풀로 단단하게 고정시킨 것이라 만져 봐도 됩니다. 제 작품은 해체와 파괴로 출발했지만 이것은 ‘비워 내는 것’이 아니라 ‘쌓아 가는 것’ 행위라는 것이죠. 시간에 따라 쌓여진 색의 지층. 설치 작품처럼 보이는 흔적의 덩어리가 사각의 캔버스보다 더욱 더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하죠.

Q. 대부분의 작품명이 ‘Untitle’이에요. 그런데 색에 따라 색동이나 단청이 생각나기도 하고, 유럽의 푸른 들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화가 폴 고갱은 “색채는 훨씬 더 설명적이다. 시각에 대한 자극 때문이다. 어떤 조화는 평화롭고, 어떤 것은 위로를 주며, 또 어떤 것은 대담해서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라고 했는데, 본인 또한 컬러마다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컬러별로 느끼는 감정과 해석이 다르겠지만, 제 작품은 컬러가 가지는 다각도의 표정과 심상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거든요. 어쩌면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다고 볼 수도 있죠. 어릴 때부터 컬러를 좋아했고, 폭발하는 듯 한 느낌의 밝은 컬러를 사용하는 데 큰 두려움이 없었어요. 특히 판화를 배우면서 여러 각도로 중첩되면서 변화하는 색,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드러나는 색의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분위기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요. 제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면 자체로 발광하는 ‘색’보다 색에 감추어진 ‘흔적’에 더욱 시선이 머물러요. 색은 쌓아 올린 시간처럼 보이고, 긁어서 생긴 주름은 고통, 희생, 행복 등이 배어든 삶의 흔적처럼 느껴지죠.

Q. 맞아요. 처음 아틀리에 들어왔을 때는 고요한 유럽의 햇살을 껴안고 있는 색채가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님이 땀을 흘려가며 반복적으로 색을 긁어내는 과정을 목격한 후엔 캔버스의 거친 표면과 질감을 신중히 들여다보게 돼요.

A. 완전히 마른 물감은 돌덩이 같죠. 동판화 작업을 많이 했던지라 긁어내는 기술을 나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업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요. 작업 과정에서는 긁어나갈 때 참을 수 없는 굉장한 소리가 납니다. 특수 귀마개 없이는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죠. 화려한 색채의 흔적이 주는 시각적 효과와 과정이 잘 매치되지 않아 사람들이 이 과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매우 고통스럽고 인내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저는 정신과 육체의 고난이 필요한 이 과정이 제 작업의 핵심이라 생각해요. 가능하면 어려운 방식으로, 될 수 있는 한 불가능한 방법으로. ‘쉽게’ 할 수 없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전시회 일정이 잡히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어요. 순전히 ‘시간’과 ‘노력’으로 완성하는 그림이죠. 어떤 이는 기계나 타인의 힘을 빌리면 안 되냐고 묻지만, 작품은 효율성과 논리를 따져 완성되는 것이 아니에요. 제 작품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것은 ‘색’이 아니라 ‘에너지’니까요. 저의 손, 마음, 머리에 담긴 에너지가 캔버스의 살결에 파고드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 저 또한 쾌감을 경험하기도 하고요.

Q. 물감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거 같아요. 물감 특유의 화학 냄새가 강하지 않네요.

A. 천식이 심해 이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냄새가 나지 않고 발색이 좋은 물감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오랜 시간 끝에 프랑스 브랜드를 찾았죠. 지금까지 한 브랜드의 것만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Q.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이런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여요.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가능한 일인 것 같네요.

A. 종교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요. 창 밖에 보이는 유채꽃도, 청명한 하늘도 모두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라 생각을 하죠. 작업실을 디자인할 때 지붕과 가까운 곳에 작은 창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빛이 쏟아서 작업실 전체를 밝힐 때엔 경건한 마음이 들어요. 저는 작업을 하면서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나날을 위로 받는다고 생각해요. 때론 제 작업실은 묵상과 기도를 위한 좋은 공간이 됩니다. 과거 예술가들이 교회를 지을 때의 마음처럼 하늘과 가까이 가겠다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한 곳에 쏟아 부으며작업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거짓된 방식을 쓰고 싶지 않아요. 어시스던트를 쓴다던가, 전기 드릴을 사용한다던가 하는 식. 오히려 더욱 힘들고 고된 방식으로 더욱 솔직하게 저의 열정과 의지를 작품에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할 꺼에요.

Q.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허경애의 작업은 ‘과정으로서의 예술’, 즉 일종의 ‘회화적 퍼포먼스’로 규정할 수 있다. 그녀의 작업은 비록 다색을 다루고 있지만, 과정 중심의 회화적 수행(performance)이란 관점에서 보면 반복과 촉각성, 그리고 행위가 중심을 이루는 한국의 단색화와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고 해석했어요.

A. 2018년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 도록에 실린 글에서 저의 반복, 촉각성, 회화적 퍼포먼스 작업이 단색화 대표 작가 정상화의 작품과 묘한 연결 고리가 있다고 하셨는데, 큰 찬사죠. 감사한 일입니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지만 제 DNA는 한국인이니, 한국인으로서의 생각과 의식이 반영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단색화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보다는 허경애라는 이름 세 자로 남았으면 해요. 한국 미술 또한 이제 여러 작가군이 펼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죠.

Q.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한국을 넘어 더 큰 나라로 가고 싶었어요. 대부분 영어권 국가를 택하는 것과 달리 아티스트가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유럽권으로 가고 싶었죠. 1순위가 프랑스 파리였어요. 프랑스어를 좋아해 대학교 때도 꾸준히 프랑스어를 공부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막상 유학 와 대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다 보니 아티스트에겐 자유가 없더라고요. 하하. 예술과 관련한 폭넓은 분야의 공부를 해야 했고, 프랑스어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죠.

Q. 파리에서 1 시간 정도 떨어진 조용한 도시, 에브뢰란 곳은 어떤가요? 원래 파리에서 활동하지 않으셨나요?

A. 파리에 아틀리에가 있었지만 외곽이었어요. 집과 갤러리를 오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작업을 하면서 육아까지 병행해야 했기에 스트레스가 컸어요. 아이가 크면서 파리 아파트를 떠나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작업과 삶을 함께 꾸릴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떠오른 곳이 이곳 남편의 고향이죠. 이 건물은 사실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에요. 시댁 식구들이 모두 근처에 살아요. 원래 집을 부수고 작업실과 집이 연결된 건물을 새롭게 지었어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변경했는데, 무거운 캔버스를 세우거나 눕힐 수 있게 충분한 규모를 확보하고, 사면에 창을 내 바람이 잘 드나드는 덕분에 물감이 잘 마르죠. 볕 좋은 날에는 밖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머리가 복잡할 때는 야외에서 양궁을 하기도 해요.

Q. 최근 프랑스에서 아트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이 많이 보여요.

A. 파리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더욱이 아티스트란 직업으로 생활하는 것은 더 힘들죠.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고리타분한 말이겠지만, 그림 자체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에너지를 쏟다 보면 기회는 옵니다. 그 시간을 인내하지 못해서 문제죠. 유럽 갤러리는 작가가 어느 대학교를 나오고 어느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어가 유창한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오로지 작품으로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오랫동안 미술과 동고동락했기에 작품과 작가를 대하는 기준도 평가도 남달라요. 컬렉터 또한 각자의 스토리가 있고요. 갤러리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작가를 채찍질하지만, 그것이 배려라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어요. 아티스트의 사정과 능력을 알고, 요구를 찬찬히 들어주죠.

Q. 지금 작업 외 다른 시리즈로 변주할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A. 지금의 시리즈에 정착하기 전 수많은 작품을 시도했었어요.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설치, 영상 작업까지. 물론 아티스트로서 늘 새로운 작업에 대한 갈증이 있죠. 그러나 가능하면 제 호흡법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드러나지 않게 변화를 주려 합니다. 숙성된 방식으로요.//

장소 : 갤러리 메르씨엘비스
일시 : 2020. 03. 04. – 04. 1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