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서정展(피카소화랑)_150115

현서정의 즐거운 나의 집(Happy Virus Story)

박옥생,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1. 집으로의 시학(詩學)
행복, 희망, 꿈, 미래는 인류의 멈출 수 없는 오랜 염원이다. 이러한 염원들이 축적되어 문화를 꽃피우고 인류의 풍요로운 삶으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현서정의 그림에는 이러한 행복과 희망이 들어 있다. 작가는 마치 정원사와 같이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마을을 만든다. 그가 만들어낸 마을에는 온통 봄의 향기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고 붉고 노란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마치 일상의 스냅사진처럼 말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집, 정원, 마을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거울로서의 내밀한 풍경으로서 확장되고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집으로의 몽상은 우리를 고요한 성찰의 순간으로 끌고 간다. 또한 집은 몽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매개체로서의 공간이자 지친 몸과 정신이 쉴 수 있는 안락과 휴식의 공간이다. 작가는 아름다운 기물들을 가득 채움으로서 이 안락하고 따뜻한 행복의 공간에서 내밀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작가의 화면은 휴식이며, 일상의 사물들은 희망과 행복의 다짐이자 증거인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행복의 사물들은 작가가 끊임없이 기억하는 삶의 긍정으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안락으로서의 집은 정원으로 완성되고, 마을로, 세계로 나아간다. 휴식을 위한 공간들은 풍부한 생명이 잉태하고 자라나는 유기적인 자연으로 완성된다. 그 자연에서 숨 쉬는 꽃, 동물, 나무들은 생명의 찬란한 표정을 담고 고유한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서정의 휴식으로 구조화된 화면은 마치 어린이의 조형어법처럼 경쾌하고 밝다. 화면 곳곳에는 유년기의 동화책과 같은 명도 높은 색의 운용과 단순한 조형들로 가득 차다. 동심(童心)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화면은 집이 몽상가의 상상과 휴식으로의 시간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내밀한 상상과 휴식의 세계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즉, 동심을 자극하는 유년기의 조형어법과 집을 통한 공간의 표현은 작가의 상상력과 몽상에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은 모두 휴식과 안락으로 향하는 상상력의 매개체이며, 작가가 꿈꾸는 세계를 극대화하고 그 감상의 진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로써 완성되는 작가의 예술세계는 작가가 희구하는 세계의 단상이며 존재의 가치이며 삶의 의미인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따뜻한 가정에는 엄마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요리를 하며 안락하고 큰 쇼파가 있다. 작은 화분에는 꽃들이 피고 거실에는 그림이 걸려 있으며, 넓은 창문 밖으로는 곱게 단장한 마을과 하늘과 자연이 펼쳐진다. 작가는 마치 자신의 그림 속에서 유희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즐거운 집에서의 삶을 향유하고 있는 듯하다. 해피엔딩의 동화처럼 작가는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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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니르바나(Nirvana)의 풍경: 성찰(省察)에서 환희로, 희망으로
작가의 화면은 화려한 색깔과 밀도 높은 구성, 안정감 있는 형태들을 느끼게 한다. 탄탄한 형태와 조형들에서 어떠한 확신에 가득 찬 용기와 믿음들이 배어나온다. 마치 우리의 삶은 행복이며 기쁨이며 또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밖에 없다는 확신에 찬 믿음 말이다. 사실, 작가의 조형은 인간의 이면(裏面)에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고통, 슬픔과 같은 삶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농도 짖게 인식하고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 성찰의 깊은 지층으로부터 뚫고 나온 화면은 니르바나(Nirvana: 法悅)와 같은 종교적인 기쁨과 환희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승화된 즐거움과 기쁨은 이와는 대척점에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내면에 견고하게 스며든 자상(刺傷)의 상처(Trauma)와 같은 검은 빛의 삶의 무게를 먹고 자라난 것이다. 어쩌면 깊게 침잠하고 사색되어진 성찰의 시간들은 작가가 구현하는 확신에 찬 밝은 화면을 지탱하는 강한 힘의 근원일 수도 있다.

또한 환희의 화면은 어쩔 수 없는 슬픈 짐승으로서의 인간을 향한 연민과 사랑의 시선인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작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승화된 시선이며 또한 인간을 바라보는 성숙된 시선이기도 하다. 이 성숙되고 승화된 시선 앞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휴식과 안락을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자정(自淨)의 순간을 경험하는 듯하다. 즉, 작가의 조형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땅처럼 퇴적되어, 비로소 영글어져 그 위에 피워낸 매혹적인 꽃이나 열매와 같은 것이다. 즉, 삶의 향기인 것이다.

“모든 창조는 일종의 정신적인 니르바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작가는 환희의 니르바나를 향하여 오래고 짙은 삶의 경험을 축적시키고 수렴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비로소 조화로운 ‘즐거운 나의 집’을 탄생시키고 있다. 또한 작가가 곱게 가꾸어낸 마을의 풍경과 푸른 하늘은 현재의 작가의 삶을 확인하는 기표이며, 오지 않은 미래의 긍정적 예감과 설레임의 가시화인 것이다. 현상학자들이 말하듯이 “꿈이 삶을 조정하고 삶에 대한 믿음을 준비시킨다”는 말처럼, 현서정의 즐거운 나의 집은 작가의 꿈을 펼쳐내고 현재 자신의 삶을 자리매김하는 증표이자 미래를 향한 삶의 다짐이며 확인의 언어들인 것이다. 이 조화롭고 따뜻한 언어에는 인간에게 던지는 긍정과 희망과 용기가 담겨 있다. 이는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는 강력한 힘을 내재 하고 있다. 이를 행복을 가득 품고 세계를 감염시키며 희망과 긍정을 선사하는 유쾌한 이야기(Story)라 부르고 싶다.(글 박옥생)

– 장소 : 피카소화랑
– 일시 : 2015. 1. 15 –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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