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River展(카린)_20200507

//전시 소개//
Green River
‘Green’은 대표적인 자연의 색으로 평화로움, 안정을 의미하며 정원, 낙원, 봄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많은 문화권에서 젊음이나 설익음 등의 아직 원숙 되지 않은 싱그러운 그 무엇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 전시 제목인 ‘Green River’는 위에서 언급한 문화적으로 동의된 초록 이 내포하는 의미를 더 확장하여 그 초록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시간과 공간을, 가치와 가치를 연결하고 소통한다. 그리하여 전시 ‘Green River’에서는 예술가의 삶이 유리(액체)가 되어 녹아 흐르는 시이자 초록이 흐르는 강으로 공간(전시)을 구성하여 관람객들에게 제시한다.

이재경, 이정윤 2인전

이재경 Melting time: 시간을 녹이다/유리블로잉/2020
이정윤 The Songs for leaving and living: 사라지는 노래, 살아지는 노래
/Fused Glass, Glass powder, Plants/2020
Code Green: Installation_Lighting + fused glass lens_지하벙커

설치미술가 이정윤과 유리예술가 이재경, 이들의 2인전이 5월부터 ‘카린(구.메르씨엘비스)’에서 두 달간 열린다. 두 작가는 본 전시에서 작업의 재료로 ‘유리’를 사용했다. 같은 물질을 다른 예술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프레임으로서 재료의 사용방식, 예술과 기술, 노동과 시간, 예술 또는 예술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생각들이 본 전시의 관람을 통해 담론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작업노트_이정윤//
높고 낮은 강도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재해로 인해 동반되는 상실과 슬픔의 시간 속에서 ‘예술’이라는 언어가 가장 무용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2020년에 들어서면서 거짓말같이 세계를 지배해버린 바이러스 앞에서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기대어 살던 시대가 끝이 나고, 어쩌면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일상이라고 믿던 것들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과거’가 되면서 어쩌면 세상은 토머스프리드먼이 말한 진정 ‘평평한 세계’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 사라짐의 공포 앞에 누가 더 낫고, 모자람이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또 사라지게 된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도 우리는 살아지는 시간을 확인하고, 또 살아갈 날을 꿈꾼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 앞에서 예술가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예술가이기에 조금 다른 점이라면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도 어떤 언어로 내가 말할 것을 번역할지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순간은 찬란했던, 그러나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다시 깨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보듬으며 살아갈 날들을 꿈꾸는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번역할 재료로 ‘유리’를 선택했다.

‘유리’라는 재료는 과냉각된 액체로서 온도에 예민하고, 적정 온도를 만나면 물처럼 흐르다가, 금방 식어 고체덩어리가 된다. 그 투명함은 영원하지만, 동시에 연약하다. 재료의 물리적인 성격은 내게 다채로운 프레임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렌즈’로 다가왔다. ‘코끼리’, ‘넥타이’,‘하이힐’, ‘풍선’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설치작가에서 이제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액체’, 순도를 잃지 않는 무언가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나타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예술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재료’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유리에 대한 동경과 함께 2019년 봄, 부산에서 ‘이재경 작가’와 블로잉 작업실을 오픈했다. 1200도의 온도를 만나면 액체가 되어버리는 유리를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아가며 형을 만드는 블로잉 작업을 20여 년간 해 온 이재경 작가에게 ‘유리’의 물성을 배우면서, 기술을 넘어 ‘유리’가 은유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철학적 의미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나(이정윤)는 자투리 유리판을 갈아내어 가루로 만들고, 아름답게 꽃꽂이 되어있다 시들어버린 용도가 다한 꽃들 위에 그 가루를 뿌려 가마에 구워내는 퓨징 기법을 사용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연금술사가 마법의 가루를 뿌려 쓸모없는 것에서 빛나는 ‘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의식’과 같았다. 고민이 집적된 오브제인 동시에, 한편에서는 렌즈가 되어 의미 있는 그림자들을 만들어내는 이번 작업 과정을 통해 과거의 ‘나’, ‘현재’의 나로부터 몇 걸음 걸어 나와 다른 시각으로 삶을 통찰하고,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다양한 프레임으로 공간과 시간의 축을 재구성해보았다.

일상이라 불리우던 것들을 새로운 ‘렌즈’로 들여다보기. 그것이 지금 예술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이전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사라지는 소중한 모든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살아갈 날을 다시 노래할 때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노래(레퀴엠), 그리고 살아지는 노래(The Songs for leaveing and living)를 부를 때다.

이재경은 그동안의 작업에서 일상의 소소한 소리들, 음악 선율들을 기억하고 이를 수집하여 색으로 녹여내는 유리 블로잉 작업을 오랜 시간 해왔다. 본 전시에서는 ‘시간을 녹이다 : Melting Sound’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풀어낸다. 영롱한 빛의 유리구슬들, 흘러 녹아내리는 파랑을 품은 유리잔, 그리고 두 가지 색의 유리를 뜨거운 상태에서 붙여 불어내는 인칼몽 기법을 사용한 오브제들에서는 유리 블로잉 테크닉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수십 년간의 작가의 노력과 땀이 만들어낸 철저하고 완벽에 가까워진 ’균형감‘과 아름다운 형, 색을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쌓인 시간, 그리고 그것이 녹아내리는 이재경 특유의 작품에서의 완성도는 예술가가 추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이다. ‘유리’라는 재료가 어떤 익스트림한 스포츠보다 짜릿하다는 이재경 작가의 작품에서 절묘하게 컨트롤 되고 있는 ‘시간’을 경험해볼 수 있길 바란다.

장소 : CARIN
일시 : 2020. 05. 07. –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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