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학 유작展(미광화랑)_130315

황인학, 박동한, 김진성, 안재덕, 장진만, 김경, 이병용…
이들은 경남 출신 미술 작가들 중 80~90년대에 요절한 작가들이다. 작년부터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이들 작가들에 대한 유작을 찾고 있지만 소장가의 파악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한다. 간혹 발견 하더라도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곰팡이나 세균 등으로 손상된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처럼 지역에서의 요절한 작가들의 유작전은 시립미술관처럼 공공기관이 아니고서는 쉽게 개최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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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3월 15일부터 광안리에 있는 미광화랑에서 마산 출신인 황인학 작가에 대한 유작전을 개최하고 있다. 황인학 작가는 1941년에 마산에서 태어나 40대 중반인 1986년에 작고한 작가다. 황 작가는 주로 동판 부조작업을 했는데, 이번 전시에는 동판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드로잉들도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이다. 미광화랑의 김기봉 대표는 몇 해 전 우연히 수집한 황인학 작가의 볼펜 드로잉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후 조금씩 수소문 끝에 작품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군데군데 녹이 슨 동판에 새겨진 도상들과 다른 몇몇의 도상들은 수첩에서 보았던 내용들과 그 형용이 대체로 흡사했고, 표면으론 거대한 수족, 과장된 유방, 드러난 성기 묘사 등이 일견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이면으론 어떤 끈끈한 감성의 체취가 물큰하게 풍겨나고 있었다. 그렁그렁 눈물방울에 적어드는 애련한 촉감이 동판 위고 환영처럼 스치며, 보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시리고 아팠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의 마음에 드리우져 있었을 깊은 외로움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친 달빛처럼 설핏 그 위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리라” – 김동화의 서문에서

동판 작품은 그 완성의 단계가 특성상 붓으로 그리는 작품보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이미지의 부분 부분이 즉흥적이기 보다는 오랜 시간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고단한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황인학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성기나 유방 같은 이미지들은 그의 전체적인 작품 속에 중요한 의미를 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의 뒤섞인 이미지 속의 얼굴들은 때론 고뇌에 차거나 육체 속에 파묻혀 마치 그의 현실을 표현 한 것이 아닌 가하는 느낌이 진하게 다가온다.

그의 작품에 대해 마산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서인숙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五月 광암리

– 황 인학 씨께 –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나 그를
누가 그렇게 불타라고 했나

南海
광암리
바다에는 五月 하늘이 구름 두엇 흘린 채 일렁이고

낡은 의자, 찌그러진 냄비, 칫솔, 책, 음악, 벽에 붙은 그의 그림들, 그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었지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자란 긴 머리, 깎지 않은 수염, 술에 취한듯한 눈매, 회색 바지, 빨간 샤쓰, 그의 모습은 이러했지만 五月의 햇살에도 그는 부끄럽지 않았다.

캔버스에 길어 올린 바닷물은
뭍으로 뭍으로 파도를 밀어오고
캔버스에 듣는 뱃고동소리는
먼 바다 수평선으로 아스라이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곳에서도
그는 자신이 빚은 몇 개의 조각품과 이야기하며
몇 폭의 그림 속을 드나들며
살고 있었다.

아, 누가 그를 그렇게 살라고 했나
뜨겁게 뜨겁게 불타라고 했나
생활을 던져버린 그의 나체
파도만이 휩쓸고 있는 비닐집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사나이


– 장소 : 미광화랑(부산 광안리)
– 일시 : 2013. 3. 15 –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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