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展(18-1 갤러리)_20231010

//전시 소개//
이정희의 회화적 이미지 안에는 식물과 대지와 인간의 몸이 핵심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식물이나 대지가 인간과 분리된 하나의 자연으로, 즉 스스로 충만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과 교감하고 공생하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화폭에서 생명의 기운을 품어내는 나무와 꽃과 풀은 인간의 몸에 깃들어, 서로에게 생명의 기운을 나누는 ‘나무+사람’이고 ‘꽃+사람’이며 ‘풀+사람’으로 재현된다. 이 깊은 교감은 대지와 몸이 만나는 순간에도 빛을 발한다. 대지와 몸은 서로에게 형상을 빌려주는 이상한 교환의 형상으로 그려지면서 서로를 향해 스미고 있다. 화폭 속의 인간은 어김없이 대지를 상징하는 흙빛으로 채워지며, 진흙으로 빚어낸 원초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몸에서는 거듭거듭 식물이 자란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상상세계 속에서 식물과 대지와 몸은, 그 소리는 다르지만 의미는 같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이다. 이렇게 하나로 이어지는 생명의 만다라 속에서 서로를 싹 틔우고 성장시키며, 꽃 피우고 열매 맺히는 존재의 지지자들로 이들 상징은 화폭에서 서로 교감하고 있다.

이 교감의 언어를 엿듣는 일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대면하는 순간이자 문화와 문명의 화려한 장식을 걷어낸 순정한 생명의 맨얼굴을 만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러한 회화세계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울림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낸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자연의 경고를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는 현실로부터 기인하며, 인류의 절멸까지를 예견하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조심스럽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원하는 것은 아닐까.

자연의 겸손한 일원으로서 살아가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육식의 폭력성을 거부하는 하나의 몸짓으로 채식주의자(vegetarian)나 더 나아가 과식주의자(fruitarian)가 늘어나고 있다. 또 자연과의 접촉을 확대하려는 문화현상으로 어씽(earthing)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작가는 붓을 든 채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식물과 대지와 하나가 되려 하고 있다. 이 교감하는 형상과 이미지를 통해 지금이 바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그렇게 홀로 아픈 세상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리라.//이선이(시인, 경희대 교수)//

장소 : 18-1 갤러리
일시 : 2023. 10. 10 –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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