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展(공간소두)_20201215

//전시소개//
‘소두 김인환 화업(畫業) 60년전’을 열며
김소라

화가 김인환은 1941년 부산 수정동에서 태어나 무녀독남으로 자랐다. 당시 일제의 대동아 명분 침략전쟁의 여파로 부산에도 시국이 어지러워지자 부모님은 어린 아들을 시골 조부모에게 맡겼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고향인 ‘소야골’(현 울산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에서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소호리는 80년대까지도 버스가 하루 한 번밖에 들어가지 않았던 심심산골이다. 가지산, 고헌산 등 1천미터가 넘는 고산영봉들로 둘러싸인 절경의 소호계곡에서 사촌들과 어울려 보낸 유년기의 경험은 이후의 삶에 정서적 바탕이 되는 중요한 근원이 되었다. 화가 김인환의 호인 ‘소두(蘇斗)’도 ‘두서면 소호리’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게 소호리는 소두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지금껏 소두가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장소가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으로 부산에 돌아온 소두는 일찍부터 그림에 대한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학교 교실 뒷벽에는 선생님의 큰 칭찬과 함께 늘 소두의 그림이 붙여졌으니 소두의 그림 인생의 씨앗이 그때부터 싹트기 시작했을 듯하다. 소두 모친의 생전의 회고에 따르면, 어린 소두는 학교가 파하고 나면 매일 머리에 둥근 모자를 하나 눌러쓰고 뒷산 언덕으로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호주머니에는 늘 길에서 주운 온갖 형형색색의 잡동사니로 가득해서 호주머니가 성할 날이 없었고, 주워온 (모친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방에다 이리저리 늘어놓아 모친의 골치를 썩였다고 한다.
몸으로 하는 일로 평생 어렵게 생계를 꾸렸던 소두의 부모에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환쟁이’가 되는 것은 결코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기술을 배워 좋은 직장 얻기를 바랐던 부모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소두는 끝내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한 번도 화가로서의 일을 게을리하거나 포기한 적 없이 이제 곧 여든을 맞는다.
‘소두 김인환 화업 60년전’은 소두가 그동안 해온 ‘화가로서의 삶 60년’을 돌아보기 위한 전시다. 더불어 발행되는 이 도록은 그동안의 작품과 소두가 쓴 글, 그리고 전시 팜플렛과 신문기사와 같은 구체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소두의 화업 60년을 글과 사진으로 재현해보고 있다. 따라서 도록에 실은 ‘화업 60년, 시대별 고찰’이라는 필자의 글은 비평도 미술사적 연구도 아니다. 유형(有形)으로 존재하는 작품과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두의 화업을 시대 순으로 정리해보고자 했을 뿐이다.
그 글은 소두의 화업을 그 변화의 과정에 따라 대략 5단계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첫 단계인 화업의 시작은 1959년, 소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참여한 ‘제1회 시내고등학교 학생모임미전’으로 본다. 부산시내 고등학교 미술부원들의 연합전으로 학교를 벗어나 어엿한 전시장을 대관해서 연 전문적인 전시행위였다. 참여자들의 명단을 보면 이후 본격적으로 화가가된 이름이 여럿 눈에 뜨인다. 소두는 그때의 리플렛을 현재까지 62년째 보관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단청’주제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 세 번째 단계는 ‘백색시대-원생지대와 공백처’, 네 번째 단계는 ‘삼분법시대’, 그리고 ‘‘분리, 집합, 통합’ 그리고 자유의 시대’가 현재까지 이르는 다섯 번째 단계이다.
각 단계의 제목만으로 보면, 지난 60년의 화업이 단절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작품들과 자료들에 근거해서 살핀 결과 그 모든 단계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지닌 실험과 시도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그 일관된 문제의식이란 ‘진정한 나(우리)의 것’에 대한 질문이다. 소두는 그에 대한 답을 우리의 전통적인 철학과 예술에서 탐구하고 찾는다. 그런 점에서 소두의 작업적 화두를 한마디로 거칠게 요약하면 ‘전통의 현재화’라고 할 수 있다. 삼분법회화는 그러한 탐구와 실험의 현재적 종합이다. 전통회화에서도 소두에게서도 화면의 ‘분리’는 새로운 ‘통합’을 열기 위한 전제로서의 분리다. 소두의 분리와 통합은 또한 나(우리)의 것과 외래의 것에 대한 구별과 분리가 양자의 새로운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그렇게 해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철학적 표명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단계로 정리하고 있는 2010년대 이래 현재까지 소두는 분리와 통합 사이에서 ‘집합’이라는 더 적극적인 방법론을 실험하고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한 화면에 집합시켜서 화면을 수없이 다시각화하는 방법인데, 그것은 무한으로 열린 자유로운 통합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소두의 60년 화업 중, 20대의 ‘‘단청’주제 기하학적 추상’작업은 여러 차례 미술사와 비평의 차원에서 재조명되었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은 소두의 이 시기 작업이 더 이어지지 못한 점과 이 시기의 작품이 드물게 남아있는 점에 대한 안타까움을 글에서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은 평론가로서의 강선학 선생의 몫이다. 작업하는 화가 김인환은 자신의 문제의식이 이끄는 대로 실험하고 시도해왔다. 그것은 또한 작가의 몫이다.
20대 말 전후 소두의 작업에서 큰 단절을 보는 시각과 달리, 실제로 소두는 언제나 초기 작업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이 동시에 발휘된 문제의식에 몰두하며 화업을 이어갔다. 그것이 주류를 이루는 미술사적, 비평적 대상에서 빗겨나 있다하더라도 소두의 60년 화업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하는 절실하고 필연적인 질문과 대답, 그리고 그에 따른 실험과 발견이라는 충실한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른다.
1965년, 소두가 대학을 졸업한 해에 참여했던 ‘논꼴’동인의 동인지 ‘논꼴아트’에는 ‘한국현대미술의 현실’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 실려있다. 거기서 모든 구성원들은 서양적인 양식의 무비판적인 수용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지금도 서구적인 철학과 언어로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예술을 재단하려는 시선은 여전하다. 이른바 ‘중앙’이나 ‘주류’가 아니라, 각자의 ‘지금 여기’에서 비롯하는 다양한 시도와 실험들이 그것 그대로 주목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번 전시가 그러한 시선을 통해 감상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장소 : 공간소두
일시 : 2020. 12. 15. –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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